하늘과 땅 하늘과 땅

월남전의 비극을 딛고 일어선 여자의
"하늘과 땅"을 보고
월남전의 비극을 이긴 월남여자가 쓴 저서전이나 다름없는 "하늘과 땅 (Heaven and Earth)"을 보았다. 지금 50 대 초반으로 보이는 주인공인 풍티 레 리가 월남 중부지방 농촌의 형제가 많은 집안에서 막내딸로 태어났다. 아름다운 농촌에서 여러 가족과 평화롭게 살다가 베트콩이 들어오고 정부군이 들어오면서 비극이 시작되었다. 아무런 잘못이 없었으나 베트콩의 스파이로 의심받아 정부군에게 끌려가 전기고문을 당한 후 부모의 뇌물로 석방된다. 그러나 베트콩과 동네사람들이 의심해, 베트콩에 잡혀 인민재판을 받고 성폭행을 당한 후 살아 나온다. 그 길로 살던 동네를 떠나 사이곤에 와 부자집에 하녀로 일하다가 주인의 아이를 배고 유산하려고 했으나 못하고 쫓겨난다 (주인공이 열여덟 살에 만났던 그 주인 남자가 그 여자의 첫사랑이다). 남자가 보내주겠다던 상당한 생활비…(생략)

것으로 보인다. 또 남편의 뺨을 때릴 정도로 미국식으로 변했다. 그러나 남자가 죽기 직전에는 고칠 마음이 상당히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릴 때부터 일을 해, 몸에 밴 타고난 사업가수완으로 성공해, 13 년 만에 고향으로 간다. 첫아들의 아버지를 20 년 만에 만나고 고향집을 찾아가나, 전쟁의 상처가 너무 심해 오빠와 언니가 상당히 거부감을 갖는다 (어머니가 딸이 혼자 미국으로 가 아이들을 잘 키운 것을 자랑스레 생각해 딸을 격려한다). 그 여자가 고향이 옛날과 달라졌다는 것을 알고 미국으로 돌아와 번 돈을 월남에 자선병원을 짓는데 기부한다. 주인공이 고국을 떠나 미국에 살면서, 그 여자의 말대로, 40 년 동안에 하늘과 땅, 남과 북, 동양과 서양, 평화와 전쟁, 월남과 미국, 천국과 지옥을 오가면서 살았다.

주인공이 죽음의 순간도 많이 넘겼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미군남편과 갈등이 심해졌을 때이다. 주인공이 이혼할 뜻을 밝히자, 남편이 총에 실탄을 장전해 뒷머리에 대었을 때이다. 한 순간 생각을 잘 하지 못해 방아쇠를 당기면, 주인공과 남편의 인생이 끝날 순간이었다 (그 순간 주인공이 다시 한 번 더 죽음에 가까이 갔던 순간이었다!). 그 때 주인공이 "내 영혼이 과거로 돌아갔다"고 생각했고 또 "우리가 이승에서 모르는 사이에 저승의 업보를 치른다"고 생각했다. 또 "신이 잔인한 게 아니라 실제"라며 죽을 뻔했던 과거의 순간들, 곧 동네 청년들에게 성폭행 당했을 때와 수사기관에서 고문당했을 때의 모습을 떠올린다 (물론 이 순간들이 뒷머리에 총을 들이댄 것과는 달라도, 죽음의 공포를 느끼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다행히 남편이 총을 치우고 "당신 없이는 못산다"고 해 다시 화해한다 (그러나 그 화해가 오래 가지 못했다).

이 내용이 월남여자의 이야기이므로 불교와 관련된 장면이 곳곳에 나온다. 또 불교가 동양의 종교로 훌륭하게 비춰진다. 예컨대 마지막 장면이 이 여자가 회상하는 식으로 해, 불교식 인생관과 철학이 길게 이야기된다. 예컨대 "운명을 거부하면 고통을 받고 받아들이면 행복해진다"-"세월과 풍요와 영겁 속에서 실수를 반복하지만 그걸 고치는 데에는 한 번이면 충분하다"-"윤회의 겁을 깰 깨닫는 소리를 마음 속에서 듣는다. 내 영혼이 탄생한 순간부터 들어온 노래 소리이다"-"고통을 주는 것은 신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 약한 것을 강하게 하고, 두려워하는 것에 용감하게 맞서고, 지혜로 혼란을 극복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미래와 과거는 같은 것" 같은 내용들이다. 이런 내용들이 반드시 불교가 가르치는 철학이 아니드라도 불교의 가르침에 상당히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또 주인공이 이혼한 다음 남편이 아이들을 데려가자, 아마 그 곳에 있는 월남 절을 찾아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 때 만났던 월남 중도 "감정 때문에 탄생의 섭리를 부정하면 안 된다"-"그 섭리가 해와 달의 움직임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이혼을 하지 못하게 한다. 또 "부인이 남편에게 속죄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 부인의 영혼이 죽을 것"-"그를 거절하는 것이 자신의 속죄를 거절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주인공이 이혼소송을 취하할 생각을 한다 (그러나 남편이 자살하면서 이를 실행하지 못한다). 또 미해병 남편도 월남에 오래 근무해서인지 불교를 이해한다. 예컨대 그가 용병으로 사람을 많이 잔인하게 죽이는 게 자신의 업보라고 말한다. 또 그가 자살한 다음, 그 여자가 집으로 데려 온 점쟁이가, 죽은 남편의 영혼이 "절에다 데려다 달라"고 말한다고 전한다 (그만큼 그 미해병도 불교를 이해했다는 뜻일 것이다). 불교와 상당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는 이런 내용들이, 무엇보다도 원작에 그런 내용이 있어서겠지만, 불교 자체에 서양사람들을 끄는 상당한 내용들이 있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잘 알다시피, 불교도 2,500 년 전에 인생을 고민하고 수도한 위대한 한 인간의 정신의 결과이다. 기독교와는 달라도 훌륭한 가르침과 철학이 있다. 또 집에 온 점쟁이가 주인공 집의 앞문이 뒷문이 마주 본 것을 보고 돈, 행복, 남편 같은 모든 것이 나간다고 말하는 것이, 동양 또 일부 우리나라 사람의 냄새가 아주 진하게 나는 이야기이다. 그런 점에서 월남사람들의 의식도 우리 의식과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또 이 영화가 특이한 인생의 경험이라, 위에서 이야기한 것 외에도 삶에 도움이 될 좋은 말들이 많이 나온다. 예컨대 "삶의 길이 안전하지 않아 까다롭고 험하다"-"화창한 날만 걷는다면 목적지에 영영 도달하지 못한다"-"아버지 없는 자식은 지붕 없는 집과 같다"-"계속되는 승리는 마음으로만 얻을 수 있다" 같은 말들은 곱씹어 볼 만한 말들이다.

이 내용이 한 가족의 이야기로 전쟁으로 아들 둘이 베트콩이 되고 그 가운데 하나가 죽는다. 그러나 주인공이 베트콩의 적인 미국 남자와 결혼해 금의환향한다. 그래도 살아 돌아온 오빠가 동생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선물은 받지 않겠다며 미국과자를 거절한다. 그가 미국이 그 가족에 또 그 나라에 남긴 비극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전쟁중 계속해서 월남에 있었던 주인공의 언니가 동생에게 싫은 소리를 해도 어머니의 한 마디에 입을 다문다. 가족의 사랑, 그 가운데서도 부모의 자식에 대한 깊은 사랑을 이 영화 군데군데에서 잘 볼 수 있다. 가난해도, 고생해도, 죽음을 몇 번이나 넘겨도, 가족의 사랑에는 변함이 없다. 가족 사이의 애정이 가족이 모였을 때 분명하게 나타난다. 주인공의 어머니가 "네가 고향집에서 자기 전에는 아버지가 눈을 못 감을 것"이라고 예언처럼 말한다. 그 말대로 주인공이 미국에서 돌아와 아버지가 지은 집에서 첫 밤을 잘 때, 아버지가 전쟁 전의 인자한 모습으로 나타났고 그 후에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영혼이 마음을 놓은 것으로 보인다. 부모의 딸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는 이 이야기가 우리의 정서와도 잘 통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 여자도 딸로서 아버지를 유난히 사랑하고 좋게 기억한다. 그 여자가 아버지가 자살한 후, 아버지가 "인생의 단순함과 사랑"을 가르쳐주었고 "신과 조상에 대한 존경"을 가르쳐주었다고 술회한다. 또 주인공의 실수를 용서하고 받아주었다"고 기억한다. 아버지가 일생을 농사만 지은 농민이자 독실한 불교신자이다. 그가 나름대로 종교와 인생에 대한 철학이 딸에게 좋은 인상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자식이 기억할 정도의 이런 가르침이나 믿음은 어느 일정한 일, 물론 좋은 일이어야겠지만, 그런 일을 성실하게 오래 하면 몸에 쌓여지는 일종의 힘이자 철학이자 저력이라는 기분이 든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어떤 일을 성실하게 오래 하는 것이 그렇지 못한 것보다 낫다고 생각된다. 좀더 확대하면 요사이 평생직장이 또 평생직업이 사라지는 게, 그런 좋은 점을 배울 기회를 잃는다는 점에서는, 불안하다.

그 여자가 일생 단 한 번 몸을 판다. 두어 살쯤 된 아들을 데리고 양주나 마리화나를 팔 때 미군헌병의 간곡한 권유로 곧 귀국할 미군 두 명에게, 아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350 불을 받고 몸을 판다 (그 헌병이, 그 미군 둘이 곧 미국에 있는 부인한테 갈 터인데, 성병이 있는 창녀를 소개하지 못한다며, 몸을 팔지 않는 주인공에게 "추억"이니 "인생에 변화?"니 "세계평화"니 하면서 몇 번이나 권했다. 50 불은 소개한 헌병이 가졌다). 그 액수가 1 년을 벌어도 못 벌 워낙 큰돈이었기에 실수를 한 것이다 (물론 집에 돌아와서 울면서 후회한다). 그가 그런 돈을 모아 고향집으로 갔고 아버지도 그 여자를 용서한다. 아버지가 처음에 주인집 남자의 아이를 배어 쫓겨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창피하다고 자기 앞에 나타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그런 아버지도 마음을 바꾸어 딸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네 아들을 잘 키우라"고 딸이 낳은 사생아를 인정하고 딸을 격려한다. 그런 아버지도 그의 처지가 너무 비참했고 죽기 직전에 살아온 부인이 충격을 받은 것을 보고 괴로워하다가 막내딸을 본 후 자살한다. 그가 독실한 불교신자였으나 자신과 가족에게 닥친 전쟁의 고통을 참을 길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영화를 보면서 분명히 알게 된 것이 미국정부가 무기사용법을 가르쳐주고 무기를 판다는 사실이다. 무기사용법을 가르쳐 주는 이유가 공산주의자에게 이기기 위해서라는 근사한 명분이지만, 실제는 자기 영향력 아래에 두고 군수물자를 팔려는 수단이다. 그런 장사를 위해 훈련된 강한 해병대 하사관들을 용병으로 쓴다. 그들이 아주 잔인한 짓도 밥먹듯이 한다. 주인공의 남편이 이런 사람으로 밤에는 자기가 죽인 사람들의 꿈으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제대하면 좋은 자리를 보장해준다는 미끼로 무서운 일을 하는 것이다. (물론 필요 없으면 언제라도 내보낸다. 주인공 남편도 이렇게 밀려나 돈 문제로 많이 고민했다). 결국 그가 그런 고민과 가족에 대한 사랑과 강한 성격 때문에 자살했던 것으로 보인다.

월남전이, 우리가 잘 알다시피, 한 민족의 통일전쟁에 외국, 그것도 세계최강이라는 미국이 주역으로 대리전을 했다가 패한 전쟁이다. 프랑스가 쫓겨나면서 미국이 끼어 들었고 결국 쫓겨갔다. 민족의 통일의지가 강하다면, 미국 같은 강국도 진다는 좋은 교훈을 준 전쟁이다. 물론 월남전이란 몇몇 군수재벌의 농간에 놀아난 미국이 이른 바, 공산주의자에게 속은 전쟁이라고 생각된다. 키신저라는 착한 (?) 바보 같은 인간이 레 둑 토라는 붉은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속았다. 미국이 월맹이 평화협정이니 무어니 말을 근사하게 하면서,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공산주의자들의 술수에 말렸기 때문에 밀려났다 (인간은 자기가 태어나 성장한 분위기만 안다. 다른 말로 하면 키신저가 월맹지도자들의 마음과 음흉한 계획을 모른다! 또 다른 말로 하면 이른 바 민주주의 지도자들이 공산주의자들에게 속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물론 그렇지 않았더라면 좀 더 명예롭게 물러설 수도 있었다고 생각된다.

월남전도 그렇지만 모든 전쟁이 비참하다. 게다가 남자야 어떻게 하겠지만 여자들, 게다가 젊은 여자들이 자칫하면 정말이지 너무 비참하게 되는 수가 많다. 월남전도 마찬가지였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여자들이 미망인이 되어야했고 짓밟혀야 했고 살아가기 위하여 모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동정해도 욕할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 사회도 영악해져 모든 것이 값이 매겨진다는 말이 그것을 뜻할 것이다.

이 영화의 원작인 책의 저자이름에 주인공인 여자 (Phung Thi Le Ly)의 이름에 서양인의 성 (Hayslip)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자살한 그 미해병의 성인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서는 그가 스티브 버틀러라고 불린다). 이 영화의 바탕이 된 책 두 권 가운데 한 권이 주인공과 제임스 헤이슬립이 저자인 것으로 보아, 이 남자가 주인공과 월남남자 사이의 아이인 지미로 보인다. 그가 컸다면 책을 쓸 나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가 아마도 주인공이 미해병과 결혼하면서 그 남자의 성을 딴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것은 아마 원작인 책들을 보면 될 것이다.

1993년 워너 브라더스 작품이 이 영화는 올리버 스톤이 감독했고 그가 네 사람의 제작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가 아마도 원작인 책들을 읽고 감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 여자가 월남전이라는 상당히 길었던 전쟁에서 당했던 흔하지 않은 운명, 글자 그대로 하늘과 땅 사이를 오갔던 운명이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또 감독이 이 영화를 그의 어머니인 재클린 스톤에게 바치는 것으로 보아, 그 자신이 상당히 좋은 영화를 만들었다고 자신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