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인들을 읽고 6외인들 97

외인들
가을날 오후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앉아 있다. 이런 날은 책을 읽고 싶은 충동을 늘 받아왔다. 이 계절에 난 무슨 책을 읽을까? 꼭 독서의 계절이라고 해서 읽는 책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고른 책이 바로 김용운님의 <외인들>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나의 공동체에서 그 바깥을 싸고 도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왠지 무엇인가를 깊이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에 끝까지 찬찬히 읽을 수 있었다. 책을 놓는 그 순간까지 한 번도 책은 나의 손에서 떠나지 않았다.
개발도상국가, 물질만능주의 시대에서 소외된 인간들이 겪는 고통을 다룬 소설이다. 결코 남들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다. 오늘의 경제 성장에서 우리는 더욱 소중한 것들을 더 많이 잃어가고 있으며, 삭막해져 가고 있는지를 보여 줌으로써 경제 성장이 부른 인간 소외를 그려 본 것이다. 사람이 이웃에 살면서도 정을 안 주는 서랍 같은 아파…(생략)

인공 장현욱이란 사람은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라고 본다. 아니 작가는 불쌍한 사람의 공동체 속에서 장현욱이란 사람을 끄집어내니 작가는 우리들 앞에 세워 놓은 것이다. 그는 대학교를 졸업한 엄연한 학사다. 그러나 아직 직장이 없다. 그렇다고 그가 직장을 거부한 것은 더욱 아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직장을 구하려고 발 벗고 나서지만 결과는 같았다. 그 쪽에서 거부했고 이유는 간단했다.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 즉 늙었다는 것이다. 그의 나이 올해 38세다. 많다면 많은 나이지만 적다면 적은 나이다. 글쎄 사람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지론에 따라 늙었다고 볼 수도 있고 충분히 일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신체 건강한 사람을 집만 지키고 있는 개로 놓아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이건 우리들만의 생각이고, 사회에서는 그를 받아 주지 않는다. 부인 한옥금이 소규모의 완구점을 경영하고 있지만, 밥벌이도 되지 않는다.
왜 사회는 그를 버려야만 했는지,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서 우리 사회의 현실이 왜 이렇게 되어 버렸는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옛날, 아니 2-30년 전만 해도 우리는 열심히 일해 왔고 경제 성장도 급속도로 발전했다. 그 당시에는 실업자의 수가 별로 없었다. 갈수록 실업자의 수가 증가한다는 것은 우리 나라가 경제 성장을 한다기보다는 뒷걸음질을 치는 꼴이 되어 가는 것이다.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잘 입고 잘 먹고 잘 살았는가? 웃어른이나 나이 지긋한 선생님으로부터 늘 들어 왔던 것처럼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입을 것이 없어서 새 옷을 산다는 생각보다는 한두 가지 옷으로 입고 빨고를 싫증나게 해 왔고, 먹을 것이 없어서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막걸리 찌꺼기를 먹고 보리밥만이라도 좋다 하고 죽어라 하고 먹던 그 시절.
식구가 많아서 방 한 칸에서 새우잠을 자며 지냈다는 이야기들을 늘 들어 왔다. 그 당시에 살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보고 듣고 또는 신문을 통해 조금은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부모님께서도 늘 말씀하신다.
"옛날에는 이런 것도 없어 가지고 못 입고 못 먹고 하였는데..." 라는 넋두리에다 마지막으로 덧붙이는 말씀이 "아이고, 일찍 태어난 사람이 죄지." 그렇게 우리는 살았고 살아왔었다. 지금은 어떤가? 옛날에 비하면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는 지론이다.
돈 좀 있다고 꽤나 으쓱해 하는 사람들, 부동산 투기자들, 복부인 그들에게서는 기름기가 좔좔 흐른다. 구역질이 날 정도로.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힘이란 무엇이겠는가? 금전적인 힘이 아닌 바로 지식의 힘 말이다.
`지식에는 왕도가 없다.` 부자인 사람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무조건 배워야 하고 알아야 한다. 돈으로 욕구를 꽉 채운 사람의 허전함이란, 앎의 즐거움을 깨달은 사람보다 훨씬 클 것이다.
책의 주인공이 한 명 더 있다. 고등학교 야간 선생님으로서 일하고 있는 곽승엽이란 인물이다. 그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직장은 가지고 있다. 그에게 일어난 문제점은 바로 인간애(人間愛)이다.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고 시기하는, 자기만 성공하면 앞뒤 가리지 않는 분류의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 한 아파트에 살면서 옆집에 누가 사는 지도 모르는 냉혹한 현실을 우리는 항상 외면하면서 살아온 것이다. 사실 나도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아파트로 이사 온 지 일 년이 조금 넘은 우리 집은 그저 각자의 생활만을 찾으려 살고 있다. 이웃을 돌아볼 여유를 찾아야 함을 절실하게 느끼며 우선 나부터라도 각성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지금까지 좁게만 생각해 왔던 것을 탈피하여 넓게 생각해 보면 이 지구상에 소외된 국가들도 없지 않아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국가만 해도 소말리아, 방글라데시 등이 있는데, 먹을 것이 없어서 하루에도 1-2천 명이 죽는 것은 예사라고 한다. 의술이 발달해 있지 않은 그 곳은 아기가 생기는 대로 낳는다.
빛을 보지도 못하고 죽는 어린 생명이 얼마나 많은지 헤아릴 수 없다. 죽음 앞에선 인간의 존엄성도 인정받기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준다.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소말리아 국민들을 텔레비전에서 보면 차마 볼 수가 없을 지경이다. 우리 나라에서 그 곳에 물자를 보내 주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함께 사는 사람으로써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메마른 인정에 물을 주어 싹이 트고 꽃이 피도록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노력해야 한다.
물질만능주의와 경제 성장이 부른 인간 고독과 그 비정성을 다룬 삭막한 현대 사회의 풍속도가 바로 <외인들>인 것이다.
나에게 한 번 더 현실 사회를 노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작가 김용운님께 감사 드리며, 이 책을 통해 나의 이웃 나의 주위를 한 번 더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