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색자작 - 다움이가 크고나서 다움이크고나서2

다움이가 크고나서
오늘은 정말 좋은 날입니다. 아니, 그렇다고 하는 게 좋겠죠. 어머니께서 그토록 바라던 국제 조각전에서 금상을 받았으니까요. 어머니께선 이 트로피를 안고 춤이라도 추실까요? 아닐거예요. 어머니는 그럴 분이 아니거든요. 전혀 감정 표현이 없는 분이시죠. 무뚝뚝하시고요. 전에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 상을 받았을 때에도 그냥 "그래 잘했다" 라고만 하시던걸요. 어머니는 제가 상을 받은 걸 그다지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아요. 어머니가 그러실 땐 전 갑자기 제가 여기 왜 있는지 혼란스러워져요. 전 알아요. 어머니께서 저를 여기로 데려온 이유가 저에게 이런 것들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죠. 그래서 처음 여기에 온 며칠 동안은 미술학교를 찾는다고 바쁘셨어요. 저는 가기 싫은데, 어머니께는 제 의사같은 건 중요하지 않은가 봅니다. 어머니는 아버지랑 달라요. 마구 나열할 수 없을 만큼요. 저에게 다시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생략)

보내겠다고 하셔서죠. 저는 다른 곳으로 갈 수 없어요. 간다면 다시 한국으로 가야죠. 만약 제가 프랑스로 간다면 아버지는 절 영영 찾을 수 없을 지도 몰라요. 그렇게 된다면 제 삶은 무의미해져요. 어머니는 왜 그러시는지 모르겠어요. 항상 저와 아빠 사이를 떼 놓으려고 안달이시죠. 그래서 제가 이곳으로 오게 됐는데 또 떼어놓으려구요? 어림도 없어요. 이번만은 절대 안 돼요.
나는 그 동안 선배의 발자취가 되리라 생각되는 것들을 모두 모아 봤다. 가기 전에 입었던 옷가지들, 그리고 출판된 후 출판사 사장이 보내 온 시집. 그리고 그 시집의 수익금. 모은다고 이리저리 뒤적여 봤지만 찾아낸 것은 몇 가지 없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하나 찾아낸 것이 조각품이었다. 떠나기 전에 다움이가 조각하여 준 것. 선배는 끝까지 이것을 애지중지 했었는데... 그래서 선배의 관 속에 같이 넣을까 하다가 나중에 다움이를 만날 때를 생각해서 고이 모셔 두었다. 이제 떠나야 하는데, 사실 간다고 해도 다움이를 만날 것이 확실한 것이 아니었다. 선배가 남긴 부인의 주소, 그것이 전부였다. 사실 그 주소만으로 다움이를 찾는다는 것조차 모험이고 무모한 짓일 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선배의 물건들을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선배의 유품들을 보자 나는 죽기 전 선배의 생활들이 떠올라 그냥 가방문을 닫아 버렸다. 기억하기 싫은 선배의 생활. 나는 선배가 더 행복하길 바랬다. 선배가 그토록 바라던 다움이의 병을 고치고 행복할 선배. 다시 청년 때의 그 활기찬 모습. 분명 그리 되었으리라. 그런데, 진작 그 날이 왔는데. 그렇게 되었는데.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사람의 운명이 참으로 기구하고 원망스러웠다. 지금도.
어머니는 아직도 저를 프랑스로 보낼 생각을 고치지 않으셨나봐요. 그러나 저 역시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생각입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어요. 어머니는 프랑스로 가면 제가 더 크게 될 거래요. 하지만 저에겐 그것보다 아버지가 더 소중한 걸요. 사실 이 조각도 아버지를 만날 수 없다면 무의미한 것이니까요. 다 그 세계 조각 대회 때문입니다. 제가 그 조각대회에서 상만 타지 않았어도 어머니께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셨겠죠. 지금 같아선 저 트로피도 던져 버리고 싶습니다.
??여보세요, 문 좀 여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
이 외딴 이국에서 그 집을 찾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체국, 경찰서, 겨우 수소문한 끝에 찾아낸 집. 다움이가 있을 집. 아니, 어쩜 없을지도 모르는 집. 하지만 나에겐 마지막 희망이었다. 근데 그 집은 나의 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묵묵 부답이었다.
??여보세요 거기 사람 있는 거 알아요 문 좀 여세요. 다움아~??
사람이 없는 것인가. 어쩌면 안에 사람이 있는데도, 이 반갑지 않은 손님을 거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나는 더 세게 문을 두드렸다.
아, 저는 정말 죽고 싶어요. 결국 어머니 때문에 프랑스로 가게 됐어요. 어머니께서는 저의 마지망 희망까지도 꺽어 버린 거예요. 이제 더 이상 살고 싶지가 않아요. 하지만 한국에 있을 아버지를 생각하며, 언젠가 만날 아버지를 생각하며 참아야죠. 오늘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내려요 그리고 공항으로 가는 버스는 더디기만 합니다. 저는 이대로 도망가서 한국으로 갈까 생각도 했어요. 그러나 어머니는 제가 공항에서 떠날 때까지 배웅해 줄 거래요. 하지만 저에게는 배웅이 아니라 감시죠. 저는 정말 떠나기 싫어요.
얼마나 두드렸을까? 이 집에는 정말 사람이 없는 가 보다. 창문을 몰래 엿보고 했지만 역시 인기척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한참을 두드리다 일단 오늘밤까지는 한번 기다려 보자고 다짐했다. 다움이에게 사실을 알려주는 일인데 이것쯤이야.
그 더디던 버스도 결국 공항에 도착했어요. 그런데 다행히 비행기가 지연이 됐대요. 이 비 때문이라는데 정말 고마운 비예요. 화백아저씨는 비행기가 지연되자 먼저 가셨어요. 하실 일이 있다면서. 지연된 시간도 겨우 30분. 30분 후면 저는 떠나야 하죠. 결국 아빠는 만날 수 없는 걸까요?
점점 어둠이 밀려온다. 진정 아무 성과도 없이 돌아가야 하는 것인가. 어쩌면 이곳이 다움이의 집이 아닐런지도 모르지. 휴~. 이제는 가야 한다. 다움이, 다움이와의 인연은 결국 이걸로써 끝인지도 모른다. 다움이는 결국 사실을 모르고 마냥 아버지만 기다릴 지도. 이것이 내가 생각했던 최악의 상황이었는데... 결국.... 아니! 저건!!!
앗! 저 사람은... 그때, 그. 누나예요. 그때 병원에 있을 때 자주 찾아왔던... 정말 놀라와요. 전 지금 너무 힘들어요. 계속 뛰어 왔거든요. 엄마가 먹을 것을 사러 간 참에 그냥 냅다 뛰었어요. 도망 온 거죠. 집에 안 들리려다 아버지가 준 시집이 생각나 돌아 왔어요. 그거라도 가지고 갈려고요. 그리고 집에 가면 제가 모은 돈이 있어요. 용돈을 한푼도 안 쓰고 저금 한 거죠. 그것쯤이면 한국에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런데 저 누난 왜 있는 거죠? 참으로 오랜만이네요. 너무너무 반가워요. 저 누나라면 아빠의 소식을 들을 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