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화장법을 읽고 적의 화장법

주로 책을 구입하는 방법은 2가지 루트를 통해서이다. 우연히 서점에 들러 뒤적거리다 맘에 드는 책을 ‘충동구매’하거나 시간을 내서 인터넷 서점을 찾아 다니며 읽고 싶었던 책을 한번에 구매하는 ‘계획구매’. 이 책 ‘적의 화장법’은 주위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후자의 루트를 통해 구입한 책이다. 반드시 읽고야 말겠다는 신념아래 3월에 구입했으나 차일피일 미뤄지다 주말저녁을 함께했다.
작가 아멜리에 노통은 그 독특한 문체와 소재로 많은 팬을 거느리며 떠오르는 여류 소설가이다. 처음 그녀의 이름을 접했을 때는 노무현 대통령의 별명인 ‘노통’과 연관되어 뭔가 정치적 냄새를 지을 수 없었으나 소설을 읽는 순간 그런 생각은 말끔히 가셔버렸다. 그녀는 프랑스 출신으로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 정착, 일본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동양적 문화를 아는 유럽인이다.
‘적의 화장법’의 독특한 문체 역시, 프랑스 영화에서…(생략)

살해당한 자신의 아내라는 점에 경악해 하는 제롬.

마지막 반전은 이 책을 읽는 인비닷컴 사우들에게 주는 재미로 남겨주기 위해 밝히지 않겠다. 하지만 눈치빠른 이라면 이 책의 제목 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을 듯 하다. 이 책의 제목 ‘적(敵)의 화장법(化粧法)’에서 화장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미용이라는 의미를 벗어나 다의적 차원의 일종의 ‘가면’, 즉 위장을 암시하기도 한다는 의미를 고려한다면 말이다.

다른 등장인물 없이 단지 두 사람만의 이야기로 진행되는 내용은 조금 황당하기도 하지만, 대화를 통해 서로의 본질을 파악해 나가는 이야기가 최근들어 내가 느끼고 있는 ‘또 다른 나’에 대한 고민과 맞물려 새롭게 의미부여가 되었다. 왠지 이렇게 말하니 ‘나는 정신병자다’라고 털어놓는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현대인의 90%이상이 정신 질환을 앓고 있다는 통계를 믿으며 이 책을 읽으면 깨달았던 나의 고민도 이야기 하고자 한다.

텍스트로는 제롬이 알지 못했던 폭력적이고 광기어린 또다른 ‘나’였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죽음으로서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제롬’의 어리석음 역시 나에게는 굉장한 쇼크였다. 사람들마다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주위에서 쉽게 나는 이런 스타일의 사람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스타일이라는 것은 모든 일에 100% 적용되는 행동양식은 아니다. 나의 수 많은 행동가운데 비슷하거나 공통적으로 반복되었던 몇가지 사항만을 꿰놓아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스스로 결정내리지 않는가.

그렇다면 그 외에 버려지는 수많은 일들은 누구의 일들인가? 그 역시 내 생각과 내 판단으로 나온 나의 일이라는 것이다. 단지 그러한 일들이 자주, 반복적으로 일어나지 않을 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버려지는 나의 행동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다.

때때로 그러한 일들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과연 내가 이렇게 행동했단 말인가, 과연 내가 이렇게 말했단 말인가, 과연 내가 이렇게 표현했던 말인가…’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순간을 맞딱드리게된다. 그때서야 진정 내 안의 나를 다시금 되돌아 보게 되는 기회가 되기도 하면서 말이다. 최근 들어 이러한 순간이 자주 발생하는 것을 보면 이미 내 스스로 갖고 있는 고정된 스타일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다지 좋은 결과는 아닌 것 같다--;;)

제롬이 텍스트로의 존재를 깨닫는 과정은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도 나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 대화라는 것은 ‘왜?’라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므로 끊임없이 나 스스로 에게 ‘왜?’라고 반문하는 것도 이러한 내 안의 나를 발견하는 좋은 방법인 듯 싶다.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듯이, ‘왜?’라는 질문에 ‘그냥’이라는 답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 자신과의 대화 시간을 갖는 것도 ‘내 안의 나’를 밝혀주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을 소리내어 말하면 진짜 정신병자로 오해 받으니 주의하기 바란다. --;;)

아무튼 나 스스로를 파악하여, 나를 지배하는 온전한 나를 만드는 것이 어쩌면 인생을 제대로 즐기기 위한 받침이 되지 않을까 생각 해본다. 나는 과연 진짜 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