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3차 독후감-
책 제목 : 선택
지은이 : 이 문열
포옹
시대의 흐름인가, 당연한 논리인가.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많은 사회에 관한 많은 화두들에 대해, 그리고 그에 대한 우리의 무언가 과거와는 사뭇 다른 태도와 시각은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하는가. 모두 옳은 것인가. 단지 그 사회의 구조적 장치가 엮어 놓은 ‘필요’에 의한 허상일 뿐인가.
우리는 지금 과거를 모두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의 생각이야 어떻든, 일단 그들은 살아냈고, 그래서 지금 우리가 살아있다. 우리의 사고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지금, 우리의 미래는 그들에게는 과거일 우리의 현재에 대해 어떻게 말할까. 지금 우리에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수많은 논리들이 모두, 그들에게 받아들여 질 수 있을까.
어떠한 상황에도 꼭 들어 맞는 절대적인 답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나는 책을 읽을 때 작가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생략)

정의되고 간음은 <황홀한 반란>으로 미화된다....’
무슨 이유에서인가 그는 이러한, 학생이기 이전에 한 여자이기도 한 내가 들으면 당연히 거부감이 생길 정도로 강한 어감의 말을, 글의 첫 부분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그는 그의 선조이기도 한, 한 옛 조선의 여성이 되어서 현 사회를 바라보고 나은 점을 공유하려 했지만, 이런 식의, 속된 표현으로 기분 나쁜 말을 마구 늘어놓은 것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말 조선시대 여자가 현대를 보면 그렇게 생각할까.
우리 엄마는 그렇지 않은데-
울컥하는 느낌이 든다. 남성이 억지로 여성의 시각을 가지기 위해 이러한 자기 비하가 필요했던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각성을 위해 한번, 강하게 밀고 나가 본 것일까, 정말 그저 여성의 탈을 쓰고 남성중심주의 사상을 부르짖은 것일까. 책의 표지를 보니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이렇게, 나와 비슷한 비판과 평가들을 받은 것 같았다. 저자는 그러한 평가 또한 비판하며 강하게 부인한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어느 정도, 그의 이러한 표현들을 이해할 만 하다. 그는 정말 조선시대 여인이 되려고 애쓴 것 같다. 현대의 사고방식과 새로운 사상들이 옳은 것이라고 믿고, 아니 적어도 옳아져 가고 있다는 것은 믿는 우리에게, 완벽히, 그리고 비판 없이 과거의 생각으로 돌아가서 현대를 바라보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았으리라. 기껏 해서 과거의 탈을 써 보았자, 현대의 개방적 사상들에 대한 동경이나 어줍잖은 칭찬으로 끝나는 글들보다 훨씬 매력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 자서전 비슷한 글을 읽으면서 간간히 역시, 어떻게 하는 탄성이 나올 정도의 문장, 묘사, 표현들이 있었다. 글의 전체적인 내용보다는 그 한 구절이 마음에 들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러한 글의 기교보다는 그는, 아니 이제부터 그녀라고 해야겠다. 그녀가 원하고자 했던 말은 ‘선택’, 사회적인 굴레나 어떠한 그 시대의 사고방식에 이끌린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다면, 능동적인 삶의 주체라도 되겠다는 심산이다. 어떻게 보면 바꿀 힘이 없으니까 변명으로 저런다고 쏘아 붙일 수도 있는, 비아냥거림을 들을 수도 있는, 그런 모습이었지만 그녀는 그것 또한 선택했다.
정말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가끔, 아니 종종 현 사회의 굴레를 벗어나거나 일명 반항이라 불리는 행위에 대해 남모를 동경이나, 멋있어 보인다는 넋 놓음을 한 적이 있다. 나 또한 그런 적이 많으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에 대해서, 한번 정말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청소년기의, 반사회적 시각이 자라고 있을 때가 아닌, 정말로 사회 전반에 이러한 태도와 바람이 만연하다면 결국 이는 사회의 기반을 흔들리게 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회라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그 사회 자체가 옛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후손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세워놓은 약속임이 틀림없듯이, 우리가 이러한 특정한 사회에 태어난 것 또한 어딘가에 존재할 지도 모르는, 이 사회에서의 쓰임을 위한 신들의 은밀한 약속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운명이라고도 불리는 것, 바로 그것일까.
운명을 운명으로 여기고 불평으로 혹은 그런 것이 없더라도 마치 생각 없는 종이 인형처럼 운명에 끌려간다면 그의 삶은 주위 사람에게는 사회에의 희생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글속의 여인처럼 운명을 ‘선택’으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뛰어든 사람은 어떠한 형태의 어려움이 와도 상대에 대한 불평이 아닌 나름의 변명을 지어낼 수 있고 좀더 능동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만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태어난 순간부터, 나는 운명처럼 많은 일들을 겪어 왔지만 그들이 모두 나의 선택이라면, 여지껏 내 삶에 후회해 본 적 없는 나이지만, 언젠가는 생길지 모르는 그런 후회들이 좀더,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을까. 물론 사회에 대한 비판과 끊임없는 성찰은 사회 발전의 밑거름이 된다. 그러나 비판 한 가운데에 자신의 삶을 놓지 않고 자신의 삶 가운데에 비판을 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여유롭고, 어려움이 닥쳐도, 그 비판이 자신의 전부가 아니기에, 자신의 굵은 인생의 기둥을 여전히 자랑스럽게 버티고 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
‘억지로 끌려하는 것은 끌려가는 이도 괴롭지만 보내면서 그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이에게는 더 큰 괴로움이 된다.’

작가는 이 한 조선시대 여성을 통해, 여성을 여성이기 이 전에 한명의, 나름의 인간으로 보아달라는 요구가 간절하고 당연시 여겨지는 이 시대에, 조심스럽게 한명의 여성으로 보아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가문’을 통한 자신의 영원성과 어머니로서의 권리, 큰어머니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그녀와 비슷한 삶을 살아 왔던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비록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고 해도, 스스로의 삶에 대하여, 스스로를 둘러싼 사회와 많은 사람들에 대하여 나름의 변명을 가슴속에 준비해 둔 사람은 얼마나 내적으로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불합리하게만 여겨지는 수많은 생각들을 자신의 가치에 맞추어 놓은 사람은, 세상을 좀 더 넓게 바라보는 시각과 더불어, 그의 비판은 역사 속에서 시간의 그늘에 드리워 져 한낱 불평에서 그치지 않고 당당한 제 발언권을 얻을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될 것이다. 수많은 세월동안 수많은 사람을 담아왔을 ‘공간’인 사회에, 그 어느 것도 이로운 것이 없다면 어찌 존속 하였을까- 아마 생물학 적으로도 불가능 할 것이다.
‘보다 나은 다음 세상을 준비하는 것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세상이 망해도 사람은 길러야 합니다.’
그녀의 정당화 중에는 이렇게 정말 소중하고 고귀한 생각들이 잠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선택, 사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며 하는 수많은 선택들 중, 사회적 여건이나 그 사람의 상황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선택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진리일 뿐인 것은 아닐까.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선택된 삶 속에서 살아간다. 나에게 곧 다가올 여성이라는 짐이, 나에게 극복해야 할 대사인지, 아니면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할녀석인지는 내가 조금 더 자라보아야, 나의 다 자란 몸이 담길 사회가 어떤지에 따라 다시 내가 선택해야 할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나에게 내 삶을 ‘선택할’ 여유가 있냐는 것이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여성으로 태어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후회’라는 단어를 쓸 여지가 없기는 하지만-) 정말 존경한다는 표현을 쓰고 싶은 선생님 한 분이 나에게 ‘되도록이면 실패를 많이 겪게 해 주고 싶다’ 는 말을 기억하며, 나는 고통이 따르더라도, 내 삶이 여성이라서 더 쉬울때 다가 올 내적인 공허함과 여성이라서 더 어려울 때 다가올 외적인 불만 따위를 잊은 채, 그러한 사회라는 전체에 대한 내적인 실패감 들을 나의 자랑스러운 훈장으로 여길 준비가 되어있다, 아니 적어도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 또한 어머니라는, 여인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크고 아름다운 이름이자 가장 강한 모습인 이 세 글자를 껴안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사실, 더군다나 남자들이 많은 이러한 과학 분야에 몸을 담으려고 생각중인 나에게 있어서 여성으로서의 자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동등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꿇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나의 이성관에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 덕분에 사회를 ‘극복’의 대상이라고 당연하게 외쳐오고, 내가 ‘여자’임을 그만큼의 고귀한 지위를 가진 존재임을 망각하고 살아오던 삶에서 나는 다시 선택했다.
삶을 스스로 껴안았음을-

장마가 이제 시작인걸까.
하늘의 푸른빛은 벙어리의 웅얼임처럼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나 나름의 ‘존재하는’ 제 소리를 만들어 내는 얇은 장막으로 너무나 흐리게 번져있다.
과거의 여성에서 나는 미래의 사람이듯, 언젠가는 내가 몸의 모습을 감춘 후, 아주 오랜 후에,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현재라는 광장에서 제 목소리를 내고 있을 나의 자손들에게 나의 삶은 어떤 의미로 다가갈 것인가. 소리 없이 그들의 발을 받쳐주는 광장의 벽돌이 될 수도, 끊임없이 광장의 타고난 소리꾼들에 의해 신명나게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좀 더 크게 바라보고 싶다. 아직은 어리니까, 죽음이라는 것이 두렵기만 하고 꺼려지는 존재이지만 언젠가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껴안을 수 있는’ 순간이 올 때를 기다린다. 그래서 오늘도
‘하루를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해가 지는 것이 세상의 끝이다. 그러나 긴 세월을 자기 것으로 품은 사람에게는 내일의 시작이다.’
라는 작가의 말을 되새기며 나는 지금 오늘도 아름답게 ‘살아갈’ 선택을, 내 ‘아름답게 살아감’을 껴안을 준비를 하고 있다.
삶이여, 여성이여, 꿈이여, 그대는 나의 포옹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