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을 읽고나서

자기 앞의 생을 읽고나서
이 책을 읽을 당시의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을 겪고 나서 휴식기간을 가질 때였다. 인생에 있어서 아주 큰 갈림길에 있었고, 사람과 사랑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될 때였다. ‘한 시간 독서로 누그러지지 않은 걱정은 결코 없다’라지만 현실에 부딪혀서 많은 고통을 받게 되니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을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아서, 미루고 미루다가 보게 된 책이다. 예상과는 다르게 책에 빨려 들어가서 아주 단번에 읽게 되었다.
간단하게 줄거리는 이렇다. 모모는‘로자’라는 유태인 아줌마와 함께, 다른 창녀들의 아이들과 함께 사는 아랍인 소년이다. 모모는 나이에 비해서 어른스럽고 엉뚱하기도 하면서 뛰어난 성찰력을 갖고 있는 아이이다. 모모는 자신의 엄마에 대해 알고 싶지만, 주변 사람들 모두 무언가 숨기는 눈치이다. 엄마에 대한 애착으로 모모는 젊은 여인을 따라가기도 한다. 십대가 되고 부모…(생략)

처음에는 로자 아줌마가 모모를 좋아한다는 것이 잘 느껴지지 않았지만 로자 아줌마가 늙어가고 또 모모도 점점 어른스러워 지면서 아줌마의 사랑이 저절로 느껴졌다. 가슴 찡하게도 모모는 아줌마를 너무나 사랑하며 아꼈고 그래서 끝까지 아줌마가 원하는 대로 해주기 위해서 거짓말까지 쳤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 책의 처음부터 말미까지 로자 아줌마가 등장하지 않았던 부분이 별로 없었던 이유일 수도 있겠다. 모모는 말로는 아줌마가 못생겼고 고약하다고 하고 젊은 여인을 따라가며 그녀와 비교를 했으면서도 결국 아줌마를 가장 아꼈으니 말이다.
가장 충격이었던 부분은 모모의 아버지가 등장했던 때였다. 모모는 그가 자신의 아버지인 것을 알았으면서도 그를 제3자의 입장인 것 마냥 행동했다. 그가 엄마를 죽였다고 한 것, 그가 죽은 것 또한 아무 감정 없이 받아들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간과했던 것은, 모모는 나나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다는 점이었다. 고통들로 점철된 모모의 생과 환경들은, 고통은 물론 모든 감정들을 억누르게끔 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점점 이 책이 비교적 단순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무척 어려운 소설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끔씩 모모가 던지는 질문들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중에서 가장 마음 아팠던 말이, 하밀 할아버지에게 했던 질문이었는데,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도 살 수 있나요’ 였다. 로자 아줌마도 모모에게 거짓말을 해 왔던 건 그를 너무나 사랑하게 돼서였다. 모모가 계속 우산을 친구 삼아서 가지고 다녔던 것도, 사랑을 줄 사람이 필요해서였다. 하밀 할아버지도 모모를 아꼈기 때문에 그에게 계속해서 삶을 알려주었다. 의사선생님도 로자 아줌마에 대한 애착이 있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관심을 기울이며 그녀와 아이들을 돌봤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보면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는 것 같다. 모모가 말하는 ‘불행한’ 자신의 삶에서 조차 사랑과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가득하니까. 그래서 그런지 그 질문에서 모모가 느끼는 불안감이 그대로 전해져서 마음이 너무 아팠었다.
나도 모르게 모모에게서 위로를 받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초등학생 때 독후감을 쓰면 특히나 이런 내용의 책에서는 ‘너무 불쌍했다. 주인공은 엄마가 없는데 나는 엄마가 계셔서 다행이다. 엄마께 잘해 드려야겠다.’는 등의 얘기를 쓰는데, 이런 글은 상대적인 자기 위로일 뿐 그 이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책은 자기위로를 위한 것만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내가 위로를 받았다고 한 취지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는 모든 상황이 나의 통제 안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계획을 확실하게 잡아두는 편이었고, 가방에는 늘 여러 잡동사니들로 가득했고, 준비를 철저하게 하지 않았다면 아예 놔 버리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계획에서 차질이 생기거나 뭘 놓고 오거나, 준비를 철저하게 하지 않았다고 하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스트레스는 살면서 아예 없을 수 없는 요소이기는 하지만, 나는 과도하게 많은 부분에서 받았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모모는 나와 사뭇 다른 생각들을 하는 아이이다. 나는 나만을 위한 걱정을 했고 나를 위한 성찰을 했다고 하면, 모모는 주위 사람들에 대해서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삶에서 전반적으로 더 넓은 부분에 대한 의구심을 갖는다. 나는 결국 나만을 위한 생각들에서 나온 고통이었지만, 모모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더 성장되고 있는 자신을 향한 고통, 즉 성장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조금 더 나의 내면을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게 되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게 되었고, 더 이상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요즘은 여러 방면의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으면서 많은 위로를 받고 있다.
이 책에서 또 인상적인 것을 꼽으라면 등장인물들의 주위를 자꾸 맴도는 인종과 종교이다. 책에서는 유태인, 아랍인, 흑인 등 인종과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이 나온다. 로자 아줌마가 삶의 전반적으로 고통을 받게 된 원인도 그녀가 유태인이라는 이유에서였고, 모모의 아버지가 죽은 것도 아들이 유태인처럼 컸다는 충격에서였다. 종교가 뭐길래. 하는 생각이 내내 들었었지만, 적어도 이 책의 등장인물들 사이에서는 아주 중요한, 삶의 일부분 이였던 것 같다. 나의 감수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박해 받은 사람들에 대해서 나는 측은지심보다는 동변상련의 느낌이 있다. 아마 우리 역사에서도 핍박을 받았던 시기가 많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로자 아줌마가 자꾸 악몽을 꾸고, 조그만 것에서 예민함을 보이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팠다. 본인도 인종과 종교에서 많은 핍박을 받았음에도, 모모나 모세에게는 계속해서 각각 종교 교육을 시킨 것도 생각을 해 볼 만한 주제인 것 같다.
그리고 묘하게도 아줌마의 치매증세가 심해졌을 때는, 이범선 선생님의 `오발탄`에서 ‘가자! 가자!’를 반복하는 주인공의 어머니 캐릭터가 생각이 났다. 둘 다 전쟁의 트라우마로 인한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행위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트라우마를 가진 이들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결국 많은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오발탄`의 주인공과, `자기앞의 생`의 모모처럼. 자기 앞의 생은 뭘까. ‘자기 앞의 생’의 화자가 왜 어린아이 였을까. 아직 삶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에게는 어려운 질문이다. 책을 읽었다고 해서 답이 나올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시간이 조금 더 지난 후에 내가 이 책을 다시 생각해 봤을 때, 혹은 다시 읽어봤을 때, 진지하게 답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책으로 남게 되는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