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을 읽고나서

타인의 고통을 읽고나서
현대 사회에서는 타인의 고통을(멀리 떨어져서, 사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셀 수도 없이 많다. 잔혹한 행위를 담은 사진들은 상반된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평화를 주장하는 반응 아니면, 복수를 부르짖는 반응을. 아니면, 뭔가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는 정보를 담고 있는 사진들을 계속 본 나머지 충격에 빠져, 의식이 멍해질 수도 있겠다. (p.30-31)
좀 더 극적인 이미지들을 찾아 나서려는 충동이 사진 산업을 등장시켰으며, 사진 산업은 곧 충격이 소비를 자극하는 주된 요소이자 가치의 원천이 되는 것이 정상적이라고 여겨지게 된 문화의 일부가 됐다. (p.45)
고통을 받아들인다는 것과 별개로, 고통을 증명한다는 것에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통을 둘러싼 도상학은 기나긴 족보를 갖고 있다. 흔히 재현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고 간주되는 고통은 신이나 인간의 분노가 낳…(생략)

슬프거나 간담을 서늘케 하는 뭔가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더라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반응을 억누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습관화된 반응이 자동적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이식과 삽입이 가능한) 이미지는 실제 현실과는 다른 법칙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p.126-127)
사람들은 으레 엄청나게 잔인한 사건들과 범죄들의 현장을 담고 있는 사진을 보고 싶어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오히려 우리는 이런 사진들을 본다는 것의 의미, 자신들이 본 것을 현실에서 그대로 따라할 수 있는 사람들의 능력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p.144)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연결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 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p.154)
현대의 삶이 사람들을 타락시키는 일련의 공포로 이뤄져 있으며, 사람들이 이런 공포에 점점 익숙해져 간다는 주장은 현대성에 대한 비판, 그러니까 현대성만큼이나 오래된 비판의 근간을 이루는 사고방식이다. (p.158)
그러니까 상스럽고 소름이 돋을만한 이미지가 무차별로 확산된다면 윤리를 지켜나가며 생생한 감수성으로 각각의 경험에 반응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견해는, 이런 이미지의 확산을 보수적으로 비판한 견해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p.160)
어떤 보도 매체가 긴 시간을 할애해 전쟁이나 여타 파렴치한 행위를 보여줄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통 때보다 훨씬 더 빨리 돌려버릴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이런 소식에 예전만큼 그리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는다는 주장은 틀림없이 사실과는 다르다. (p.169-170)
뒤로 물러선 채 사색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옛 선인들의 말을 빌려보자면,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그와 동시에 누군가를 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p.172)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수많은 전쟁사진이 주는 참혹함 또는 얼마나 전쟁이 나쁜가에 대한 이야기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놀란 점이 있다면 바로 책 속에 있는 수많은 전쟁이 남긴 사진들은 나에게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는 이미지라는 것이다. 그만큼 이 시대는 우리는 아주 쉽게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차별한 테러 또는 전쟁들 까지도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인 수전 손택은 단순히 전쟁을 보여주는 이미지의 단편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하고 있지 않았다. 사실 전쟁 사진을 찍을 때 완전한 사실만을 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보지만, 사실 그 사진조차도 완전한 진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또한 타인이 고통에 대한 이미지 자체가 갖는 문제와 그 이미지를 통하여 우리가 그 고통을 바라보는 자세를 이야기하길 원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면서 타인의 고통을 보는 우리의 태도는 어떠한가. 전쟁을 겪지 않은 사람들은 일단 자신의 시야에서 벗어난 고통이기 때문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저 통상적인 비난을 던지기 일쑤이다. 또한 대중매체를 통해 접하는 여러 가지 이미지들에 있어서, 물론 처음에는 크게 놀라겠지만 차츰 지나면 연민과 동정을 지닐 뿐이다. 그러다 시간이 흐를수록 부담스러워 하거나 나의 일이 아니라고 안도의 한숨을 쉴 것이다. 이 ‘다행함’에 대한 태도를 다시 생각해 보면, 다행함 이라는 것은 어떤 충격적이거나 타인의 어려움 또는 고통 등을 보고 느끼게 되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감정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처럼 타인의 고통이 앞으로 하룻밤의 진부한 유흥거리라도 된다면, 이제 우리는 타인이 겪는 고통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그 참상에 정통해질 수 있고, 그 순간마저 진지해질 수 있는 가능성마저도 없어져 버릴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또한,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과 무고함까지 증명해주는 알리바이가 되어버리기에, 단순히 연민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리고 잔혹한 이미지를 보고 가지게 되는 무감각함을 버려야 한다고 말이다.
사진에 관해 이야기 해보자. 사진은 그 특성상 그것이 사실이거나 또는 왜곡되어 있는 진실이기도 하다. 그 어떤 말보다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사진은 작가의 프레임에 들어가는 어쩌면 지극히 주관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즉, 사진 이미지도 누군가에게 선택된 이미지일 뿐이다. 그렇다면 사진은 단순히 나쁜 것인가 단순히 자극만 전달하고 사라지는 그런 존재일 뿐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진작가들에게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다. 전쟁사진은 특히 ‘예술’이 아닌 ‘사실’의 재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진은 어떻게 해서든지 주관이 들어 갈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피할 수 없다. 실제로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우리가 사실만을 보여준다는 전쟁사진 중에서는 꽤 연출된 사진들이 꽤 있었다. 오늘날은 전쟁의 고통을 보여주는 이미지가 너무 많이 퍼져 있어서 꽤 유명한 사진작가들의 사진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얼마나 최근의 일인지 쉽게 잊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아주 예전부터 사진작가들은 전사들이 전쟁에 참여해 수행하는 업무의 긍정적인 부분, 또는 전투를 지속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진들을 제공해 왔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크림전쟁부터 아프가니스탄 침공까지 전쟁의 참상을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사진 하나하나를 아주 객관적인 시선으로 고찰하고 있다. 전쟁사진의 기록은 우리에게 곧 그 전쟁의 순간의 타인의 고통을 증명하는 도구가 되었다. 이 책의 사진 중 유명한 사진 하나는 1968년 미국 연합통신 사진작가인 애디 애덤스가 남긴 ‘어느 공화군 병사의 죽음’이다. 언덕위에서 한 남자가 서있고, 어디선가 날라 온 총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을 순간 포착해 전쟁사진의 역사상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시발점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장면을 두고 수전 손택은 이렇게 말했다. “영원히 죽음을 응시하고 있고, 영원히 살해당하기 일보 직전에 처해 있고, 영원히 학대 받고 있다고..”
어쩌면 전쟁사진은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숨겨진 욕망일 지도 모른다. “고통 받는 육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욕망은 나체가 찍힌 사진을 보려는 것과 같은 것 ”이 될 수 있다고 지적 한다. 우리는 호기심을 넘어서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고 그 은밀함과 잔인성을 더해 잠재적인 공범자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우리는 고통을 규정할 수 없다. 그래서 그 고통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고통’을 생각해야 된다. 사진은 보는 사람에 따라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도 있고, 무감각과 무기력함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사람이란 자기 자신이 안전한 상황에 있다고 느끼는 한은, 이러한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해지기 마련이라고 했다. 연민은 변질되기 쉬운 감정이며,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이런 감정은 쉽게 시들해 진다고 했다. 또 앞으로 우리가 느껴야 하는 것은 사진을 보고 연민과 동정을 느낄 뿐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그 사람이 느낀 그대로 이해할 수 있진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완전하게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어쩌면 공감을 못 할 수 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동정과 연민에 그치지 않고 그 사람의 고통에 조금 더 다가가고자 하는 노력 말이다. 그런 노력의 바탕엔 타인에 대한 애정도 필요하다. 어쩌면 이러한 애정이 없다면 수전 손택이 경계하는 것처럼 연민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필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하루하루가 공포의 나날들이고 전쟁이 진부한 일상인 곳에서는 이런 경험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 즉 이런 전쟁의 경험을 단지 이미지로만 알고 있는 우리들에게 전쟁이 과연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봤다. 솔직히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그 끔찍한 상황을 실제로 이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들, 즉 전쟁을 겪지 않아도 되며 안전하게 살아왔고, 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오늘날 대중매체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과 같이 그저 전 세계적인 스펙터클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은 것뿐만은 아니라고 믿는다. 타인의 고통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사진 이미지를 다룬 책이 아니라 참혹한 전쟁을 다룬 책이다. 우리 모두는 이 책을 통해 전쟁의 본질과 그것을 바라보는 연민의 한계, 그리고 양심의 명령까지 좀 더 진실하게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그저 사진이 아닐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웃에 대한 관심, 더 나아가 전 세계에 대한 사랑 일지도 모른다. 사랑의 깊이가 노력과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는 씨앗이 된다. 비록 온전하게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고통에 닿으려는 노력은 꼭 필요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살아갈 때 타인의 고통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고, 그 것에 책임감을 느끼고 작은 일이나마 행동으로 공감할 수 있는 노력을 하기로 다짐해 본다. 내 작은 행동이 바람이 되어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믿는다. 저자는 타인의 고통을 통해 이러한 격려를 해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