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운몽과 옥루몽을 읽고나서

구운몽과 옥루몽을 읽고나서
구운몽에서는 양소유를 둘러싼 8명의 여인들에 놀라는 한편, 어린 마음에 많은 여인들의 사랑을 받은 양소유가 내심 부럽기도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조금은 나이가 들어 구운몽을 보니, 여덟명의 여인들보다 구운몽이란 제목에 더 끌리게 된다. 9명의 꿈. 양소유와 8선녀 모두를 동등한 대상으로 보고 누구를 중심으로 하여 꿈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성진(양소유)과 8선녀 모두의 꿈이란 것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흔히, 구운몽은 양소유의 소설이라 생각하기 쉽다. 양소유가 환생한 8선녀를 차례차례 만나가면서 또 입신양명하여 결국 어우러져 살았다는 식으로 양소유를 사랑한 8명을 도매금으로 묶어넘기는 경향이 많이 있다. 물론, 옥루몽에 비해 여성 캐릭터가 입체적이거나 구체적이지는 않다. 그럼에도 구운몽의 여성 캐릭터들은 나름의 능력과 개성을 소유하고 있는 인물이다. 가장 눈에 띄던 인물은 토번의…(생략)

은 지배층의 사회 통합논리가 아닌가 싶다.
반면, 옥루몽은 좀 더 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구운몽에 비해 현실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듯한 인상이다. 그래서 현상계(꿈)속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보다 구체적이고 극적이다. 구운몽의 양소유도 물론 여러 장애를 만나기는 하지만, 옥루몽에 비한다면, 평면적인 길이다. 등장인물의 묘사도 그렇다. 옥루몽에서 주인공은 사실, 강남홍같다는 인상이 들었다. 양창곡을 둘러싼 여인들의 관계도 그렇다. 구운몽의 8선녀가 서로 의형제를 맺고 사이좋게 사는 이상적인 모습을 그렸다면 옥루몽에서는 양창곡이라는 남자를 향한 연모, 다툼, 질투가 현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벽성선을 암살할 음모를 꾸미는 황소저의 모습도 비록 악녀로 묘사되어 있긴 하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란 생각이 든다. 강남홍도 역시 매력적인 여걸이다. 미모, 지혜, 문장 모든 걸 갖추고 있어 평면적인 인물이 되기 쉽상이지만, 그녀는 대신 강물에 투신하고, 타국에 가서 몸을 의지하는 등 복잡한 인생 행로를 걸어간다. 특히, 양창곡과 적으로 대치하게 되었을 때 미련없이 버리고 양창곡을 따르는 부분은 감동적이기 까지 하다. 문득, 쉬리의 한 대목이 떠올랐지만, 강남홍이 쉬 버릴 수 있었던 것은 그곳이 자신이 몸바쳐온 조국이 아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강남홍, 황소저에 비하면 여타 여인들의 모습은 평범한 캐릭터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윤소저는 현모양처의 전형적인 여인상이다.- 그래서 강남홍이 그녀를 양창곡에게 소개했는지도 모르지만- 적국의 공주였던 일지련의 모습도 새롭다. 요컨대, 옥루몽의 여인들은 대개 자신의 운명에 주동적인 하나의 생생한 인물로서의 면모를 띠고 있다. 이렇게 살아있는 한명 한명의 캐릭터가 옥루몽의 재미를 더 느끼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구운몽과 옥루몽은 여러모로 비견되는 훌륭한 작품이다. 그 방대한 양이 그렇고, 그 안에 살아 숨쉬는 여러 인물들이 그렇다. 이 두 작품이 갖고있는 나름의 특성과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굳이 한 쪽의 손을 들자면 옥루몽이다. 그것의 더 긍정적인 현실 인식이 맘에 들기도 하고 더 세밀한 인물의 묘사가, 혹자들이 말하는 삼국지 같은 방대한 스케일이, 또 특히 매력적인 인물들이 등장한 까닭이다. 언젠가 옥루몽을 무대로 올려보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