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호킹의 위대한 설계를 읽고나서

스티브 호킹의 위대한 설계를 읽고나서
지금으로부터 130여년 전에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외쳤다. 그리고 그 이전에 독일 철학자 칸트는 ‘형이상학의 죽음’을 선고했다. ‘형이상학이 만학의 여왕이라고 불려진 때가 있었다....그러나 형이상학에 갖은 모욕을 표시하는 것이 이제는 시대의 유행이 되어서, 형이상학의 노녀는 추방되고, 버림받아 헤쿠바처럼 탄식하고 있는 중’이라고.
그런데 2010년 지금 스티븐 호킹이 ‘위대한 설계’에서 다시 또 ‘철학과 신의 죽음’을 선언한다. 그는 철학이 그동안 사람들이 던지는 수많은 질문들-우리가 속한 세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우주는 어떻게 작동할까 실재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 모든 것은 어디에서 왔을까 우주는 창조자가 필요했을까-에 답을 해왔던 전통적 영역이었으나 ‘이제 철학은 죽었’고 ‘온전히 과학적 범위 안에서, 어떤 신적인 존재에도 호소하지 않고’ 우주 창조에…(생략)

구석구석에 논쟁거리는 무수하지만 전체적이고 총괄적으로 보자면 이 책은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는 데, 그의 의도를 읽어보자면 ‘과학은 모든 것’이다라는 것이다. 실상 과학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중세 기독교가 지배하던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신의 뜻대로 움직인다고 보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의 삶의 지표를 신의 구원에 두었고,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지동설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갈릴레이는 죽을 때까지 가택연금을 당하고, 죽은 후에도 죄인이기 때문에 묘를 쓸 수가 없었다. 뉴턴의 근대 과학은 우리의 세계관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인과율에 따라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고, 과학적인 사고방식은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칭송받았다. 지금 우리가 ‘왜’라는 질문을 하는 것은 근대 과학의 영향 때문이다. 그런데 현대과학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은 또 다시 우리의 사고방식을 뒤흔들어 놓았다. 인과율에 의해 우리는 정확히 잴 수 있고, 알 수 있으며 따라서 칼처럼 분명하고도 언제 어디서나 보편타당한 진리를 알 수 있다는 기계론적 사고관이 통째로 흔들리게 되었다.
과학은 우리에게 ‘사실’을 제공하며, ‘사실’은 우리가 어떠한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는 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부분의 합이 전체가 아니 듯이 요소들을 모아놓는다고 해서 그것이 ‘의미’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이 과학에서 발견한 사실들을 100가지 안다고 해서 그들 모두의 사고방식이 같을 수가 없다. ‘사실’과 ‘의미’사이에는 어떤 간극이 존재한다고 나는 믿는다. ‘의미’란 일단 인간의 문제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미’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단순히 사실의 총합으로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내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현재로서는 매우 암울하고 우울한 사실만을 나에게 제공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러한 사실들로부터 ‘암울하고 우울한 이 시대’를 절대화하지 않는다. 사실은 어떤 이가 어떤 삶에 ‘의미’를 둘 것인가의 재료일 뿐이다. 그 재료를 가지고 어떤 요리를 만드는 가는 굉장히 복잡하고도 다양한 경험과 역사와 인간들의 관계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나는 스티븐 호킹의 ‘위대한 설계’가 주는 유익한 요소들이 많이 있고, 또 나의 구태한 사고방식에 신선한 공기와 같은 역할을 하는 새로운 관점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호킹이 ‘환원주의’에 빠진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인간은 세포로 구성되어 있고, 세포는 분자로, 분자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서 원자를 분석하면 인간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통 철학에서처럼 뜬구름 잡는 사변만을 늘어놓는 것이 옳다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의 통일을 생각해야만 한다고 본다. ‘누구’나 ‘무엇’의 죽음이 아니라 각각의 영역이 가지는 장점과 관련성을 잘 이어나가는 “통섭”의 정신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시대적 정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