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을 읽고나서 이방인 3

가령 나는 무언가 다른 생명의 연장으로서 이 세상에 왔고 어릴 때의 나와 지금의 나, 그
리고 앞으로의 나는 다르다. 지금 이 순간도 나의 세포는 죽고, 재생하고를 반복하고 있다
. 죽어가는 세포는 그저 죽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포의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죽음이라는 것도 그렇게 슬퍼하거나 억울해 할 게 아닌 것 같다.
매일 죽고 재생하는 것의 반복이라고나 할까? 그러므로 죽음은 죽음이 아니다. 그것은 새
로운 생명의 창조라는 결실을 낳는 원인이다. 따라서 나의 죽음은 새로운 생명의 창조 과
정의 일부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토록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죽음이란 생명의
영원한 순환 과정 속에서 나역시 그것에 동참하는 것일 따름이라는 생각을 갖고 편안하게
맞이하는게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한 조건 아닐까? 뫼르소의 행위는 사회적…(생략)

그것은 한 여성이었다. 개나 여자가 도망쳤을때 그
들이 어쩔 줄 몰라 하는 걸 보면서 혹시라도 그들이 결국은 개, 여자를 사랑했구나라는 생
각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건 사랑이 아니다. 집착이요, 철저한 자기애다. 하필 그 대
상이 개, 여자였을 뿐이다. 청소년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나오는 말 중에 하나가 가정의
문제이다. 주로 빈곤층 가장에게서 보이는 처자에 대한 폭력, 그것이 결국 아이를 거리로
내몰고 아이를 폭력적이게 만든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것이 있
다. 하나는 사람들의 비난 뒤에 도사린 두려움, 가정에서 내몰린 아이들은 그들의 아빠와
마찬가지로 또다시 그들의 존재 의의를 확인할 희생물을 탐색한다. 다른 하나는 이 사태에
서 비난받아야 할 당사자는 다름 아닌 비반하는 자.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아니, 더 크게
는 사회 전체가 비난받아야 한다. 애당초 이 사태의 원인 제공자는 자신의 존재 의의를 상
실했다고 느끼게끔 만든 것, 곧 크게는 사회 질서요 작게는 비난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위 두가지 논리를 합치면 사회가 낳은 희생양은 또 다른 희생양을 낳고, 그 희생양은 또
다른 희생양, 곧 희생양을 만든 자를 희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론적으로 희생양을
만들면 내가 그 희생물이 된다는 것이다. 살라마노와 레몽의 인생에게 남은건 두가지뿐이
다. 살라마노처럼 삶의 의욕을 상실한 채 죽을 날만 기다리거나, 레몽처럼 또 다른 희생양
을 찾아 어슬렁거리거나 어느 쪽이든 간에 그 부담은 고스란히 그들을 희생시킨 자, 그들
을 손가락질 하는 자, 이런 사람들의 집단인 사회로 간다. 문제는 어떤 하나의 논리, 하나
의 질서로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는데 있다. 관심, 배려, 사회적 가치, 질서, 정의 등등...
겉보기의 화려함과 논리의 정교함 뒤에 도사린 이 어마어마한 폭력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시간도 살라마노, 레몽은 여기저기서 만들어지고 있다. 태어나는 게 아니다. 만
들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나 자신이 바로 이런 집착의 희생양이
자, 또 다른 희생양을 낳는 자가 되는 과정에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살라마노, 레
몽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던 것이다. 사회가 따돌린 살라마노와 레몽을 대하는 뫼르소의
태도는 한마디로 무관심이다. 그는 그들이 특별히 자기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그저 무
심하게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대한다. 사회적 평가는 애초부터 생각조차 없었다. 모든
흥미는 자발적으로 나온다. 관심은 다름 아닌 자신에 대한 관심이 본질이다. 모든 사람들
이 손가락질하는 저들을 거리낌 없이 대했을 때, 나에게 어떤 이익이 있지? 다른 사람은
나를 어떻게 볼까? 등등 이런게 바로 관심이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기울인다는 게 정말 그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하는 것일까? 말로는 의도적으로 그렇다고 애기하지만, 실제로는 자
신의 가치 판단, 자기 기준이 작동하는 건 아닐까? 관심이 낳는 것은 소수에 대한 애정과
다수에 대한 마음, 위계질서다. 우리는 무관심의 무차별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있는 그
대로의 것을 봐줄줄 알고, 그와 나와 다른점은 그저 차이일뿐, 결코 차별거리가 되지 않는
그런 `무관심=무차별` 말이다.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는 바로 이 차이나는 것들 간의 자연
스러운 어울림이다. 무관심성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관심하게 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것을 그대로 봐줄줄 아는 힘. 산을 오르는 자의 삶도 지켜볼 줄 알고, 오
르지 않고 머뭇거리는 자의 삶도 지켜 볼 줄 아는 힘. 다만, 우리가 결코 방관해서 안되는
한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이 무관심한 자연스러움을 함부로 재단하고, 단 하나의 질서로
획일화 시키려하는 점이다. 그것에 대한 도전, 반항. 이것이 나중에 뫼르소가 발견한 유일
한 진리였던 것이다. 따라서 뫼르소가 살라마노나 레몽과 어울린 것은 그 자체로 자연스러
움이요, 그들을 소외시키는 자들과 사회에 대한 비웃음, 철저한 무시, 반항인 것이다. 어
디서부터 무관심이고, 어디서부터 관심인가? 뫼르소는 그런 의미에서 자유인이다. 우리가
뫼르소에게서 배울 건 무관심한 사랑이다. 집착하지 않는 것, 지켜볼 줄 아는 것, 있는 그
대로를 보는 것, 그럴때 나는 사랑과 결혼으로부터 자유가 될 것이다.

뫼르소는 아랍인에게 총을 쐈다. 왜 쐈냐고 묻자 ` 태양빛이 강렬해서...아랍인의 칼날에
반사된 그 강렬한 빛이 내 눈을 찔러서`라고 대답한다. 이 대목을 이해하자면 왜 카뮈는
굳이 이런 장치를 마련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두 가지로 본다. 하나는, 세상이
인과관계로 맺어져 있다고 착각하는자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또 하나는, 이런 식으
로밖에는 생가하지 않는 자들에게 울리는 한방...두방...세방...네방의 총소리다. 뫼르소
의 살인은 그야말로 충동의 결과이다. 그것에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겠는가? 물론 사람을
죽이는 건 나쁘다. 그러나 카뮈가 말하고 싶은 것은 살인의 미학이 아니다. 충동의 미학이
요, 위대함이요, 창조성이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걔는 그럴 줄 알았어, 전에
도 그랬다니까...그래서 이렇고, 따라서 오늘의 결과는 필연적이었다는 논리들을 펼친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뫼르소의 행위는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충동적이지 않
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특히 중요한 갈림길에서 일수록 충동이 결정적으로 운명을 좌우하
는 경우가 많다. 우연과 우연들이 합쳐져 관계들이 맺어졌고, 시간은 흘렀고, 역사가 이뤄
졌다. 물론 일방적으로 우연을 찬양하자는 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충동적이고 비논리적
이고 모순에 가득 찬 뫼르소의 행위에 대해서도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정도의 말은 할 수
있는 것이다. 냉철하게 이성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말은 남에게 적용할 때는 마치 대단한
설득력을 갖는 것 같지만, 막상 자기에게 적용될 때는 엄청난 폭력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
야 할 것이다. 뫼르소의 총성은 이런 이성, 합리, 위선, 허위에 대한 그래서 질식할 것 같
은 세상에 대한 도발이다. 카뮈가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장치를 마련한 것으로 인해 그에게
살인을 정당화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 역시 매일매일 충동적으로 남에게 상처를 주
고 심지어 죽이고 있으니까...따라서 충동이야말로 전혀 새로운 세계와 질서를 창조하는
원동력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형무소에서 밤을 지새웠던 뫼르소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 누구도 형무소에서의 그 밤을
상상할 수는 없다는 그의 말을 되새기며, 쇠밥 그릇에 비쳐진 자신의 얼굴에 아무리 웃음
을 주어도 심각하다는...그리고 그가 형무소에서 항상 생각했던 자신이 살 수 있는 조건에
대해서도...지금 죽으나 30년 후에 죽으나 결국 죽는 것은 마찬가지이고 언제나 죽어야
할 것은 바로 자신임을 인식한 뫼르소. 나는 무수한 관념어의 특권적인 가치들이 다른 가
치를 소멸시키는 속에서,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한 인간의 고독한 모습을 간직하게 되었
다. 온갖 별들과 징후들이 가득 찬 이 밤하늘 아래에서 이 세상의 자애로운 무관심에 비로
소 맘을 열고 이 세상이 사실상 나와 비슷함을 느끼며 행복함을 깨닫게 되는 뫼르소. 그리
고 살인에 대한 죄의식과 그의 삶을 보증할 인간 존재에 필수적인 정형화된 규범마저 갖지
못한 그가 이 세상의 모든 것에는 저마다의 인정되어져야 할 낮설지 않은 특권이 있음을
부르짖고 그 어떤 증오심조차 가지지 않은 것을 보며, 그가 왜 그렇게나 자신의 정당함이
인정될 광장의 단두대 아래로 많은 사람들이 분노의 고함소리로 자신을 맞아 주었으면 했
었는지를 알 수 있을 것같다.

사실 처음에는 세상 속에 사는 우리들과는 다른 이방인에 나타난 뫼르소를 어떻게 보아야
할 지 난감했었다. 하지만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의 난 이방인에서 내가 속한 사회가 어
떤지를 볼 수 있는 나름대로의 시각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만으로도 큰 소득이 있었다고
생각하며, 부족하나마 이방인에 대한 나의 생각을 마무리 지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