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켈러를 읽고서 헬렌 켈러를 읽고서

Helen Keller - A Life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이면 이 질문에 대해서 충분히 대답하리라고 생각한다.
“헬렌 켈러가 누구니?”
너무 나이 수준을 낮게 잡은 것일까? 여하튼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만큼 헬렌 켈러는 유명하다. 삼중고(三重苦)를 이겨낸 강철의 여인, 그녀를 그렇게 있게 한 선생님 애니 설리번의 피나는 노력, 성녀 헬렌 켈러의 사랑의 실천가. 오오오～ 헬렌 켈러여 영원하리!!!!!!
허구다.
누구를 위한 헬렌 켈러 이야기인가?
그녀는 단순히 장애인이라는 석 자로만 소개가 끝나는 것일까?
그녀도 한 인간이고, 여자이고, 평범한 다만 눈이 안보이고 귀가 안들리고 말하는 것이 힘든 사람일 뿐인데 우리는 왜 그것으로만 그녀를 기억하는 것인가? 헬렌 켈러라는 인간은 그 특성이 너무 강했던 것일까?
도로시 허먼이 쓴 헬렌 켈러 전기를 읽었다. 조선일보 books 면에서 그 책 소개가…(생략)

, 비하인드 스토리를 많이 썼다. 사실 지금까지 헬렌 켈러가 열렬한 사회주의자였고 사랑 때문에 도피 행각까지 벌이려고 했으며, 그녀를 돌봐준 사람에는 폴리라는 사람도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알 수가 없었다. 어린이나 청소년을 위한 전기문에 무슨 사랑 얘기나 사상이 나오겠는가. 더군다나 헬렌 켈러는 장애를 극복한 불굴의 의지에 전기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수가 없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내가 ‘독특한 점’이라고 한 것은 독특한 것이 아니라, ‘내게 새로운’ 전기 형식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도로시 허먼이 쓴 헬렌 켈러가 제대로-전문적으로 쓰인 첫 전기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들 헬렌 켈러는 애니 설리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얘기한다. 물론 애니 설리번의 희생 정신은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알고 보면, 애니는 특별히 투철한 희생 정신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나서 어머니의 죽음으로 동생과 함께 고아원에 맡겨진 애니는 심한 눈변을 어렸을 때부터 앓아서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강간을 당해서 미혼모가 되는 마당에, 애니는 어서 일자리를 얻어야만 했고 켈러 대위(헬렌의 아버지)가 낸 광고는 아마도 그녀의 눈길을 충분히 잡았을 것이다. 아이가 장애아면 어떠랴. 애니 스스로도 반은 장애인이었으므로 이해할 수 있었고, 애니는 고집도 세고 글쓰기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정열적이고 수준 있는 선생님이었다. 게다가 월급은 애니를 가장 만족시켰다. 즉, 애니는 특별히 성녀 같은 마음으로 헬렌을 맡았다기보다는 이것저것 재보면서 그녀를 맡게 된 것이었다.
실과 바늘 사이처럼 헬렌이 있는 곳에는 애니가, 애니가 있는 곳에는 헬렌이 있었고, 이 두 여자의 관계는 사랑이나 우정으로는 설명이 부족했다. 선생님과 제자의 관계도 아니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도 아니었다.
이 책의 카피 문구처럼, 헬렌은 박제되어 있던 삶 속에서 조심스럽게 걸어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