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태백산맥 3

태백산맥
2002년 겨울,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우리나라는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는 정책을 펴려고 한다. 지금까지 우리 한반도의 또 다른 반쪽, 공산주의 국가 북한을 빨갱이, 공산당 이라고 부르던 것과는 좀 다르다.
역사는 그 시대가 지난 뒤 그 다음 시대의 주도권을 잡은 자가 기록해 둔 것을 토대로 한다. 지금 우리가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기 때문에, 국민에게 민주주의의 장점을 가르치고 주입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을 많이 하고, 그에 따라 왜곡된 점도 많았을 것이다. 거기에 익숙해진 대부분의 우리 국민들은 공산당이라고 하면 안 좋은 이미지가 먼저 떠오를 것이라고 추측된다.
이 ‘태백산맥’ 은 분단 상황에 놓여있던 우리나라의 실정을 폭넓고 자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강대국의 세력에 의해 분단되었다가 해방이 되고, 의견의 대립으로 6.25전쟁이 일어나고 다시 휴전할 때…(생략)

역의 상당부분이 이 이야기의 지리적 배경이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때로 나는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아무리 조직적으로 설득적으로 말을 해도, 상대방의 머릿속에 박힌 고정관념 때문에 서로의 말이 상대방에게는 궤론이 되어버리는 대화가 진행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추종자의 대화와 공산주의 추종자의 대화가 그 경우인 것 같다. 서로의 말을 들어보면 두 쪽 다 논리적으로는 잘못된 것이 없다. 문제는 똑같은 현상을 두고도 해석하는 방법과 사고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벌어진다. 민주주의 추종자들이 공산주의를 비판하지만, 실제로는 자기들도 똑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었다. 남을 비판하기는 쉬워도 자기 자신의 단점을 찾기는 어렵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 처음부터 나쁜 의도를 가지고 시작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시간이 흘러서 요즘은 공산주의의 폐단을 경험하고 그 체제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사람들이 인식하게 되었지만, 20세기 중반 그 당시에는 공산주의의 체제가 가장 이상적인 이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이념을 받들었었고 많은 희생이 생긴 것이다.
다 같이 공동소작해서 공동분배를 하여, 다 같이 잘 살자는 의도에서 출발한 그들은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한다. 아직도 민주주의가 완벽하게 정착되지 않았다고들 하는데, 그 혼란스러웠던 시대에 우리나라에 민주주의가 올바르게 성립되어 있었을리는 만무하다. 일제시대에 일본에 굽신거렸던 자들은 부를 축적해 둔 상태이고, 새 정부는 그들이 자금적 후원자이기에, 또 그들의 세력이 너무 세기에 그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그런 자들은 점점 부를 축적해나가고 가난한 자들은 소작농이 되는 악순환. 이런 상황에서 공산주의 세계는 가난한 자들에게는 꿈에서나 상상할 수 있는 이상적인 세계였을 것이다.
그런 가난한 자들 중에서 실행력이 강하고 용기를 가진 사람들, 또는 조금 풍요롭게 살더라도 가난한 자들의 진정한 고통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들은 산 속에 숨어 살면서 투쟁을 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비참한 생활이었지만, 그들은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의 행복함을 위해, 가족을 비롯한 눈앞의 행복들을 버린다.
그런 자들 중에서는 여자도 있다. 자기 남편을 잃고 난 뒤 입산한 외서댁이라는 인물은 한국여자의 강인함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들의 바람은 정말 순수했다. 주위의 동료들이 죽어가는데도, 자금이 없어 상대적으로 많이 빈약한 무기를 들고 싸우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여기서 내가 얻어낸 것 중에 하나는, 어려운 상황일수록 무언가 많은 것들이 발명이 되고 발견이 된다는 것이다. 풍요로울 때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게을러지게 되고, 있는 생활 그대로에 만족을 하게 되지만, 힘들 때는, 무엇이든 개선해 보려는 마음이 생기기에 더 많은 발전이 있었던 것이다. 이미 사용한 탄알로 새 탄알을 만드는 법, 연기가 안 나도록 나무를 땔 수 있는 방법 등 정말로 그들 실상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둘 씩 발견하게 된다.
또 그들은 덜 배운 자들이라도 회의를 할 때 순서를 정해 발언을 하는 규칙도 세워져 있었고, 동료를 사랑할 줄 알았다. 자제할 땐 자제하면서도 즐길 땐 즐기고, 그러면서도 사랑을 할 줄 아는 인간미 넘치는 사람들이였다. 그리고 주민들을 최대한 배려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이 소설에서는 좌익사상을 가진 그들을 훌륭하게 평가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기 때문에 조금의 과장된 면은 없지 않아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주민들이 정말로 이 자들을 믿고 자신들의 희망으로 생각했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니다. 인간이란 참 나약한 존재이면서 이기적인 존재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복종하거나 또는 배신한다. 빨치산들이 무섭기 때문에, 죽임을 당할까봐 그들이 오면 환영을 하는 사람들. 죽음이라는 앞에서는 이렇게 한없이 나약해지는 것이 인간인가보다.
결국 3년이 넘는 긴 대립 끝에 빨치산들은 지쳐간다. 점점 생활이 어려워짐에 따라 자진해서 산을 내려가는 사람들도 있고, 많은 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죽어간다. 그러면서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기에 그들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이런 중심인물들의 모습에서도 감동을 받을 수 있지만, 주변 인물들의 세세한 행동 하나하나도 살펴볼만하다. 무당 딸 소화의 참하고 말없는 사랑을 보면서도 마음이 찡했고, 어린 나이에 동생들을 챙겨가며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의 모습, 그 사람의 사상이 어떻든 사람을 살리는 자신의 직업에 충실한 의사.
전라도 사투리가 글자 그대로 많이 표현되어있고, 비속어도 많이 나와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간 부분도 많은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 때문에 오히려 고결한 언어로만 쓰여진 소설보다 더 사실감이 느껴졌고, 깊이 마음이 통했는지도 모른다. 솔직한 표현을 한 것이 가장 잘 된 표현이 아닐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생각을 가끔가다 비판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분단시대의 비극적 역사를 이 책이 아니였으면 언제 이렇게 자세하게 알아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국사 교과서를 보면 예전 고대사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나와있으면서도- 아니 그다지 상세하지도 않긴 하지만- 현대사에 대해서는 너무 소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목적이 현실에서 더 적절한 선택을 하면서 살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이 분단기간의 역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된 지금, 내가 더 나은 선택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