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 탁류 3

탁류
중학교의 마지막 겨울 방학이었던 지난 1월에 나는 여러 권의 소설들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번에 읽어본 작품들 중에서 가장 흥미를 느꼈던 것은 바로 채만식의 `탁류`라는 장편 소설이었다. 나는 이 작품을 읽고 나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줄거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주사에게는 아내 유씨, 첫째 딸 초봉이, 둘째 딸 계봉이, 큰아들 형주와 막내 병주가 있다. 하지만 군산에서 미두라는 투기 노름이 성행하던 때 군고원을 지낸 정 주사는 미두에 미쳐 가계가 어렵게 된다. 이에 맏딸인 초봉이는 아버지의 친구분이신 박제호라는 사람 밑에서 제중당의 여점원 겸 사무원으로 근무를 하게된다. 초봉이는 혼기가 된 데다 미모의 얼굴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녀를 노리는 남자들이 많았다.
어느 날 박제호는 서울에서 제약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게 된다. 그는 초봉이도 데려가려 했으나 아내 윤희의 반대…(생략)

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딸을 낳게된다. 나는 아버지 뻘 되는 사람의 첩이 되어버린 초봉이가 너무나도 불쌍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던 초봉이의 형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형보가 찾아와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고 하며 초봉이를 빼앗아가려 한다. 이 때 초봉이는 자기가 낳은 딸 송희를 키우는데 너무 신경을 쓰다보니 제호에게 관심을 덜 갖게 되었다. 이런 초봉이가 마음에 안 들었던 제호는 그녀를 아무런 미련 없이 포기하고 형보에게 넘긴다. 결국 초봉이는 형보가 그녀의 친정에 돈을 보내주는 조건으로 그의 아내가 된다.
그 사이에 승재는 의사가 되어 서울로 올라오고 계봉이도 공부를 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 좋아하게 된다. 그들은 초봉이를 형보로부터 구해주기로 결심하고 그녀의 집으로 찾아간다. 그 사이에 초봉이는 지금까지의 모든 음모를 알아차리고 자신도 자살할 것을 결심한 상태에서 형보를 살해한다. 승재와 계봉이는 뒤늦게 도착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 진 상태였다. 결국 초봉이는 자수를 하기로 한다.

작가 채만식의 작품인 `탁류`는 군산이라는 지방 도시를 배경으로 1930년대의 도시 생활을 제시하면서, 그 속에 살고 있는 여러 유형의 사람들의 생활 양식과 양태가 서로 어떻게 얽혀 있는가를 보여 주는 동시에, 기구한 여인의 인생을 치밀하게 그리고 있는 장편 소설이다. 고향과 농토를 잃고 식민지 시대의 혼탁한 물결에 휩쓸려 무너지는 한 가족과 그 주변 인물들의 모습을 당시 사회의 어두웠던 세태를 풍자적이고 냉소적인 필치로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인 초봉이와 승재를 등장시켜서 어두움과 밝음을 대조시키고 있는 것 같다. 즉, 굴곡이 많고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어둠이란 부정적인 측면을 대변하고 순탄한 삶을 살아가는 승재는 밝음이라는 긍정적인 측면을 가라키고 있는 것 같다. 초봉이는 전형적인 한국의 순종형의 여인으로 역사의 혼탁한 물결 속에 빠져 비극적인 삶을 살아간다. 즉, 자기 개인의 이해보다는 가족의 삶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작품 말미에서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파괴하려드는 형보를 살해하고 가족의 행복을 지키려는 성격적인 변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가족을 위해서 단 한번뿐인 자기 인생을 희생할 줄 아는 초봉이의 정신은 요즈음처럼 물질 문명이 발달한 자기 중심적인 시대에는 쉽게 찾아볼 수 없을 것 같다. 특히 풍요로운 시대에서 부족한 것 없이 자란 요즈음 세대의 청소년들로서는 이러한 자기 희생이 납득이 안 갈지도 모른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서 일제 통치 시대의 우리나라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보게 되었다. 얼마나 힘들고 황량했던 시간들이었을까? 아마도 초봉이의 파란만장한 인생의 여정은 식민지치하에서 혼탁했던 시대상을 단적으로 반영해준 것으로 보인다. 식민지는 나라만, 국토만, 재산만 앗아간 것이 아니라 순수한 영혼과 삶마저도 유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