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태백산맥
저자 : 조정래
출판사 : 해냄
민족과 역사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준..
「태백산맥」은 전 10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으로 되어 있는 장편 대하 소설이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1983년 9월 〈현대문학〉에 연재되면서 그 첫 선을 보였다. 전체적인 주제는 `분단 현실의 극복과 민중적 삶의 한`이라고 하겠다.
내가 소설 「태백산맥」을 처음 대한 때는 재작년 그러니까 1994년 겨울이었다. 해방 이후 최대의 기념비적인 작품을 아직도 읽지 않았다는 때늦은 후회를 거울삼아 아내와 나는 아리랑과 함께 계단식으로(아내가 2권째 읽으면 내가 1권 읽고) 읽어 나갔다. 아내의 빠른 독서 속도를 뒤쫓아 가느라고 혼났던 기억이 문득 새롭게 느껴진다.
작가 조정래는 해방을 2년 앞둔 1943년 전남 승주에 있는 선암사에서 출생하여 광주 서중, 일고를 거쳐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였으며 1970…(생략)

48년 10월 24일 밤부터 서막이 전개되어 분단의 역사가 고정되기 시작하는 1953년의 휴전과 함께 이야기가 끝난다.
「태백산맥」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 1부는 〈한(恨)의 모닥불〉이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다. 여순 사건의 실패와 그로 인한 입산(入山), 즉 1948년 12월 빨치산 부대가 율어 지역을 해방구로 장악하기까지의 유격전 과정과 군경의 토벌 작전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과정에서 중심 무대인 벌교를 장악했던 염상진을 중심으로 한 좌익 세력의 존재와 그 사회적인 실체가 드러나며 이에 대응하는 토착 지주와 자본가를 중심으로 하는 우익 세력이 군경의 힘을 업고 벌이는 여러 행태가 잘 그려져 있다. 1부에서의 관심의 초점을 뭐니뭐니해도 비참한 입산자 가족들의 삶과 함께 중도적인 입장의 지식인 김범우 등의 활동이라 할 수 있겠다.
제 2부는 〈민중의 불꽃〉이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으며 제 2부의 내용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은 토지의 소유와 연관된 농민들의 좌절과 분노이다. 소작인 모르게 논을 처분하여 강동기에 의해 삽으로 내리찍혀 중상을 입은 고흥 지주 서운상과 지주로서 자기 소유의 논을 모두 소작인들과 공유하는 것으로 협동 농장을 운영하기도 한 서민영의 대조는 위의 사실들을 잘 대변해 준다고 하겠다. 아울러 염상진의 빨치산 부대가 벌교읍을 습격하여 지주들로부터 쌀을 빼앗아 인민들에게 고루 나눠 먹도록 한 사건도 2부 내용에서는 중요한 대목이라 하겠다.
제 3부는 〈분단과 전쟁〉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으며 6?25 전쟁의 발발과 빨치산의 하산, 미군의 참전과 빨치산의 재입산, 그리고 좌?우익의 극한 투쟁을 다루고 있다. 소설의 무대가 벌교 지역을 벗어나 전쟁의 현장을 따라 확대되고 있으며 남과 북의 상황 변화와 미국의 개입 등이 비판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제 3부의 내용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중도적인 입장을 고수하던 벌교 지역의 지식인 김범우와 손승호 등의 사상적인 선회이다. 김범우는 인민군 치하에서 전북도당에 근무하다 인민군이 패퇴하자 미군에게 붙들려 강제로 통역관이 된다. 그러나 미군들이 자행한 잔혹한 강간, 살인, 방화 등을 보고 미군 부대에서 탈출한 후 공산주의 노선을 택하게 되며 인민군에 자진 입대한다. 손승호도 6?25 전쟁 후 공산주의자의 길을 택한 후에 입산하여 빨치산의 길을 걷는다.
제 4부는 〈전쟁과 분단〉이라는 부제 아래 휴전 협정의 조인을 다루고 있으며 투쟁의 방향을 `역사 투쟁`으로 바꾼 후, 중심 인물인 염상진의 죽음으로 대하의 사건은 종결된다. 제 4부의 내용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은 포로가 되어 거제도 수용소에 갇힌 김범우가 뜻밖에도 거기서 제자 정하섭을 만나는 장면이다. 두 사람은 6?25 전쟁을 민족 해방 전쟁이라고 믿고 있으며 이들의 눈을 통해 거제 포로 수용소의 실상이 속속들이 파헤쳐진다.
내가 「태백산맥」에서 우선적으로 감동을 받았던 부분은 주제면이었다. 소설 「태백산맥」은 지리산 중심의 인민군 빨치산에 대한 그 동안의 역사적 왜곡과 편견을 말끔하게 씻어 주었기 때문이다. 좌우 냉전 이데올로기 속에서 그 동안 `적`의 이름으로만 불려졌던 빨치산들에게 민족주의나 민중주의의 시각으로 합당한 값을 매겨 주고 정당한 자리를 찾아 주자는 작자의 창작 의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울러 과거의 어떤 문학 작품에서도 시도한 적이 없는 이념의 금기 지대에 깊숙이 파고 든 이 소설의 도전적 돌파력에 찬탄을 금할 수 없었다.
둘째, 이 소설은 구성면에서도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전 10권으로 된 엄청난 양의 대하 소설이면서도 작가는 치밀하고도 긴밀한 구성력으로 이 소설을 엮어 나가고 있다. 작품 속의 이야기는 1948년 10월에서 1953년 휴전 직후까지 모두 5년 간의 시간을 담고 있지만 실제로 이 작품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서부터 해방 직후 한국 전쟁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대사의 격동기를 모두 포괄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소설의 구성에서 더욱 감탄을 금할 수 없는 것은 호남의 구석진 곳 `벌교`라는 중심 무대로 모든 인물들이 원형적으로 향하여 있고 모든 사건들이 이 곳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이다.
구성의 요소들 중에서도 인물은 어떠한가? 두 말할 것 없이 이 소설에서 중심 인물들은 여순 사건과 연관되어 지리산으로까지 내몰리고 결국 6?25 전쟁과 함께 생애를 마감하는 좌익 운동가와 그 추종 세력이다. 그 중에서도 이 소설의 전체적인 흐름으로 보아 가장 문제적인 인물로 부각되는 주인공 염상진, 그는 하층민 출신의 좌익 운동가로서 노비의 후손이다. 한때 교직에 몸을 두고 있었지만 교직을 그만 둔 후 적색 농민 운동의 주동자로 커나가게 된다. 그 다음 이념 대립의 어느 한 켠에 서기보다는 `민족의 자기 각성`을 중시했던 김범우, 그는 좌?우익 모두로부터 배제된 중도적 이상주의자(이 소설의 후반부에서 공산주의자로 변신하지만)로 민족적인 것의 우위를 끝까지 주장한다.
또한 `지주 계급 쳐 없애고 소작인 세상 만들자`라는 생각으로 체험을 통해 문제 상황의 핵심을 꿰뚫고 있는 하대치, 새로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좌익 처단에 앞장서는 염상구, 필자는 염상진에게서는 초지일관하는 이념-현실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하여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는-의 신봉을 김범우에게서는 계층적 대립과 이념적 갈등을 적절하게 포용하는 합리적인 판단의 고상함을, 하대치에게서는 행동하는 인간형의 모습을(특별히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가 걷는 어둠의 길이 미래지향형임을 생각할 때 작가의 소설적 상황의 설정에 한없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보면서 인간적 삶의 조화와 행동하는 신념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그뿐인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설정과 그들의 상호 역학 관계의 구성은 작가 조정래 씨의 탁월한 집필 능력을 가늠하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이념적 대립으로 형에게 그토록 분노의 감정을 가졌던 염상구가 소설의 마지막에서 형의 주검을 놓고 혈육의 정을 확인하는 장면은 독자들에게 소설적인 흥미를 흠뻑 제공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싶었다.
구성 요소들 중, 두 번째로 사건은 어떠했는가? 사건의 치열함 바로 그 한 마디면 족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순 사건과 지리산 빨치산 활동 등으로 이어지는 좌익 운동의 실상을 그 근원적인 것에서부터 철저히 파헤치고 있는 이 작품은 6?25 전쟁의 비극성을 우리 민족 내부의 모순을 통해 더욱 적나라하게 표출시켜 놓고 있다. 좌익 운동의 실상을 철저하게 발굴해 냄으로써 좌?우익 이데올로기의 싸움과 가진 자 즉 지배 계층과 피지배 계층의 물고 물리는 싸움의 치열성은 문학적 허구성 속에 용해되면서 소설적 긴장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마지막 구성 요소인 배경, 그 중에서도 먼저 시간적 배경에 대해서는 앞에서도 몇 번 언급했지만 이 소설은 1948년에서 1953년까지 5년 동안의 시간적 흐름을 담고 있다. 즉 여순 사건이 끝나는 데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분단의 역사가 고정되기 시작하는 단계에서 이야기가 끝났다. 더구나 이 5년 동안은 오늘 우리의 분단 현실에 가장 깊게 영향을 끼친 역사 공간이었다는 데 의의가 있겠다. 그리고 공간적 배경, 그 곳은 바로 벌교가 아니었던가! 내가 언젠가 우리 동료들과 함께 태백산맥 기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제석산, 진광산의 줄기 한가운데 자리잡은 움푹한 해방구며 일인(日人)들의 착취 현장이었던 드넓은 중도 들판, 세습 무당 소화의 집 모델이 되었다던 외딴 집, 한 마디로 벌교는 지역적인 특수성으로 지주와 소작인들이 함께 살아야 했던 대립과 공존의 땅이었다. 한편 작품의 한 부분을 요약해 보면 「벌교는 일인들에 의해서 구성, 개발된 읍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벌교는 낙안 고을을 떠받치고 있는 낙안벌의 끝에 꼬리처럼 매달려 있던 갯가 빈촌으로 고막이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일인들이 전라남도 내륙 지방의 수탈을 목적으로 벌교를 집중 개발시킨 것이었다. 목포가 나주 평야의 쌀을 실어 내는 데 최적의 위치에 있는 항구라면 벌교는 보성군과 화순군을 포함한 내륙과 직결되는 포구였던 것이다. 그리고 벌교는 고흥과 순천, 보성을 잇는 교통의 요충이기도 했으며 선착장에는 밀물을 타고 들어 온 일인들의 통통배가 득시글거렸고 왜색이 짙었으며 따라서 자연스레 상업이 터를 잡게 되었고 돈의 활기를 좇아 유입 인구가 늘어났으며 제법 짱짱한 주먹패가 생겨남은 물론이요 주된 경제권은 몇몇 일인들과 소문난 지주들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고 작가는 벌교를 묘사하고 있다.
필자는 이 벌교라는 남도의 구석진 곳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아 방대한 양의 소설적 내용을 형상화시킨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에 다시 한 번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또한 이 소설의 문체에서 정말 인상적이었던 것은 호남 지방의 토착어 구사였다. 이 작품에서 사용된 호남 방언 예컨대 `무담씨(공연히)`, `잔생이도(조금도)`, `비문히(어련히)`, `솔찬하다(대단하다)`, `씨엉쿠(시원하게)` 등은 물론이요 그 외에도 이 소설 속에 수없이 등장하는 호남 방언들은 필자로 하여금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내내 어릴 때의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해 이 소설의 진한 맛을 한층 더 돋구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사투리의 투박한 맛은 현재를 살아가는 일상 생활들 속에서 다시 되살아나 토착적 공간으로서의 언어적 삶에 한없는 긍지와 보람을 갖게 했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이 지닌 의의를 간추려 보면 우리 근대사의 큰 흐름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점과 민족 분단의 배경을 좌우 정치 세력의 대립 및 관념적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설명하지 않고 우리 삶의 근원적인 한과 넋의 측면에서 본질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아니 분단된 민족 의식을 정신사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해방 이후 최대의 문제작이라 할 만하며 필자 개인적으로도 민족과 역사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준 작품임에 틀림없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