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전쟁 트로이 전쟁

트로이 전쟁
아직도 선명한 기억. 녹색칠판에 흰색 분필로 트로이의 목마를 그려주며 트로이 전쟁과 오디세우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초등학교때 독서반 선생님. 선생님의 검은 뿔테 안경 마저 선명하다. 나는 늘 생각했다. 선생님처럼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만큼 책을 열심히 읽을 것이며, 집중해야겠다고.
희랍비극을 읽으면서부터 나의 혼란은 시작됐다. 신화의 족보를 따지는 것과 그들의 이름을 외우는 일이 만만치 않아 책을 읽는 동안에는 메모지와 펜을 끼고 있어야 했다. 몇 해전에 그리스 로마 신화가 만화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만화로도 방영했었다. 초등학생이었던 조카는 만화를 한 번만 읽고도 그들의 이름을 줄줄이 꿰었다. 희랍비극을 읽고, 작품을 분석하면서 비로소 그들의 이름을 외우지 않고 기억해낼 수 있었다. 몇 해가 흐른 지금... 트로이 전쟁에는 정말 수많은 인물들과 그들의 이름이 나…(생략)

이야기와 영웅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2부에서 텔레마코스는 아버지를 돕는 역할로 물러나고, 오디세우스와 고난기가 펼쳐진다. 지혜롭고 용맹스러운, 오디세우스가 화이팅 하는 순간을 기다리는 묘미를 (이미 해피엔딩일 거라는 걸 알면서도...) 즐겼다 .
신화속의 인물들은 요즘 말로 하면 의리와 정의의 사나이들 일색이다. 또한 그들은 은혜를 입고도 보따리 내놓으라는 호랑이같은 인물형은 존재할 수 없을 만큼 꼭 보은을 하고야 만다. 약속을 칼같이 지킨다는 면에서도 교훈적인 내용일 것이다. 인간의 여러 유형도 눈길을 끄는데, 광기에 사로잡혀 스스로 자결하는 아이아스, 남자를 유혹하는 세이렌의 꽃밭에 들어갈 때 밀랍으로 귀를 막는 행위등은 연약한 인간의 일면이기도 하다. 연약함은, 숭고한 믿음!

트로이 전쟁의 시작은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와 사랑에 빠져 그녀를 데리고 도망친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 때문이었다. (그가 태어났을 때 예언가는 이미 트로이에 화를 입힐 아이라고 했었다)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과 벌어지게 된 이유도 아킬레우스의 여인 브리세이스를 데려갔기 때문이었다. 의리에게, 정의에게 부끄러운 일은 상대를 자극하는 최적의 조건이다.

아킬레우스가 친구 파트로클로스에게 갑옷을 내주고,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나가 헥토르와 싸우다 죽는다. 친구의 원수를 갚기 위해 나가려던 그에게 갑옷이 없자 어머니 테티스는 헤파이스토스에게 갑옷을 만들어 달라고 청한다. 그는 창을 만들고, 방패를 만들어준다. 쇠붙이를 다섯 겹 겹쳐 만든 방패에는 해와 달, 포도밭, 바다, 처녀 총각이 춤을 추는 그림, 하프를 연주하는 시인, 공격적인 사자와 사자를 몰아내려는 개와 목자등을 그려넣는다. 붓가는 대로 방패를 그려보았더니, 비록 머릿속에서 그린 것이긴 해도 축소된 지구의 모습이 보였다.
어린시절, 어른들에 의해 강압적으로 소화 해야 했던 교훈. 스무살이 되자마자 극구 멀어지려 했던 "교훈적~" "모범생적~" 짓거리는 다시 한 겹의 나이를 입을 때 마다 내 나름의 방식으로 스며들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을 지켜나가라는 교훈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아름답게 만드는 선로가 아닐까 싶다. 슬픔과 기쁨앞에서 망설이지 않고 소신껏, 온전하게 최선을 다해 감정을 드러내는 그들의 모습처럼 어떤 순간 앞에서는 정직한 언어와 표현을 드러낸다면 영웅적 삶이 별로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