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을 읽고 나서 7춘향전 N

춘향전을 읽고
저 먼 곳의 기억으로부터 광한루에서 그네를 뛰고 있는 자줏빛 치맛자락이 아른거린다. 다시금 고개를 들면, 더욱 생생해 지는 그 모습... 푸른 가지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나를 더욱 빠져들게만 하는 한 여인이 그 곳에 있다.
"먼 옛날 남원골...성..춘..향..."
글을 깨우친 대한 민국의 국민이라면 일생에 한번쯤은 접해보았을 이야기.. 나 역시 어려서부터 춘향에 관한 이야기는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코흘리개 시절 때, 보았었던 그림책에서부터 고등학생이 되어 한 권의 고전으로 접하게 되는 지금까지...
춘향전은 어느 누가 반론할 여지조차 없이 조선조 소설의 최대 걸작이다. 그것은 읽을 때마다 속속들이 알게 되는 재미와 감동으로 자꾸만 빠져들게 되는 신비한 마력을 지녔다. 먹을수록 효력이 더해지는 진귀한 만병통치약인 셈이다. 춘향전을 음식으로 비유한다면,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김치…(생략)

새로운 과정을 거쳐가고 있었다.
춘향은 다르다. 사회의 구조에 못 이겨 사랑하는 님을 떠나야만했던 여타의 비극적인 여성상과는 분명히 다르다. 생각해보면, 춘향이란 인물은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당차고 자신감 넘치는 여인에 더 가깝다. 감히 올려다 볼 수 없는 신분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몽룡을 자기 소유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변학도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상당한 반동인물로서 수절을 지켰다. 폭군적인 변학도에 맞서 수절 의식을 표방하면서 신분 상승을 성취해 가는 춘향의 모습은, 대다수 서민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으며 아울러 춘향을 통한 대리 만족의 기쁨을 이들에게 누리도록 해 주었던 것이다.
춘향은 비록 보잘것없는 기생 집안의 여성으로이지만 이별의 슬픔을 극복하고 사랑의 언약을 지키기 위해 끝없이 기다린다. 죄 없이 감옥에 갇히게 되는 일이나, 소식도 없는 서방을 그저 기다리는 일이나 모두 춘향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 여인에게 그녀의 어머니 월매의 설움에 더해져 한층 비통스런 비극이 연출된다. 천하게 태어나서 운명적인 한을 안고 있는 듯한 두 모녀의 시련. 그것은 나중에 맞게될 반전의 기회를 노려 독자를 빨아들이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춘향과 시련을 함께 한 내가 이몽룡이 어사가 되어 돌아와 춘향을 얼싸안는 모습을 보면서 꽤 커다란 통쾌함을 느꼈던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볼 수 있을까? 말하자면 고생 끝에 맞이한 기쁨이 더 큰 효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적절히 잘 이용한 것이다.
"암행 어사 출도요∼! 암행 어사 출도요∼!!"
누구나 이 부분에서 환호를 지르지 않을 수 없다. 나 역시 어쩔 줄 몰라하는 변학도의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비통한 울분을 벗게 될 춘향에 대한 기대로 짜릿함을 느꼈다. 이 대목에서 당황한 변학도가 하는 혼잣말도 읽는 이에게는 더욱 흥밋거리가 된다.
"어 추워라, 문 들어온다, 바람 닫아라. 물 마른다, 목 들여라."
춘향과 이몽룡의 극적인 상봉 장면을 읽어갈 때는, 왼쪽 다리를 꼬집어가면서까지 짜릿함과 흥분을 감춰야만 했었다. 그렇다. 춘향은 시련을 통해 더욱 성숙되어 정신적인 아름다움을 낳는 전형적 한국 여인의 미감까지 완벽히 소화해낸 것이다.
춘향전은 보다 인간적인 삶과 올바른 사회에의 지향을 추구하며, 힘없고 가난한 자에게도 행복이 찾아간다는 전형적인 고전 소설의 결말 형식으로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평범한 서민으로 신분 상승의 의지를 보여주었던 춘향의 모습, 옥에 갇혀서도 사랑하는 임을 기다리며 수절을 지킨 열녀로서의 춘향. 그 여인에 대하여 우리는 할 말이 많다. 그것이 이제껏 꾸준한 사랑을 받고 커온 춘향전에 대한 증거라고 할 수도 있다. 모녀가 겪은 기고하고도 비극적 운명과 그에 맞서 대쪽같이 꼿꼿하게 지켜온 춘향의 절개... 눈을 감으면 저 먼 곳의 기억으로부터 광한루에서 그네를 뛰고 있는 자줏빛 치맛자락이 아른거린다. 다시금 고개를 들면, 더욱 생생해 지는 그 모습... 푸른 가지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나를 더욱 빠져들게만 하는 한 여인이 그 곳에 있다.
성춘향... 내가 사는 이 곳 21세기에서도 한번쯤은 만나보고 싶은 우리 한국만의 여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