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후에를 읽고나서, 천년후에를 읽고서

천년후에를 읽고서,
매년만에 책을 사오던 우리학교가 여전히 책을 샀을 때였다.
도서실을 열자마자 우르르 몰려들어 저마다 하나씩 집어든 책들은 인터넷상에서나 사람들의 입담을 통해서나 두루 알려진 베스트 셀러들이었다.
아, 한 발 늦었구나 라고 생각하며 다른 좋은 책 없나 하고 몇 번이고 두리번거리며 고심하고 있던 내 눈앞에 제목부터 그럴듯한 책 두 권이 휘황찬란히 꽂아져있었다.
내가 신청했던 책은 이미 다른 사람 손에 들려있었으니, 별 수 없어 이걸 봐야겠다 마음먹고 책을 빌려 남아있는 점심시간을 확인하곤 책장을 넘겼다.
`내가 죽는다면 이 성좌도를, 그의 하늘을 내 무덤에 그려줘. 그의 하늘 아래서 영원히 잠들 수 있게.`
프롤로그부터 가슴을 저며오는 슬픈 사랑의 말이 적혀있었다.
기토라의 고분 천장에 있는 고구려의 별자리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현재시점에서 어느 여자…(생략)

수시아와의 사랑 또한 리아와 양덕과의 사랑보다 더욱 간절했다.
그래도 이 책에서 제일 재미있었던 부분을 몇 개 꼽아보자면, 대를 이을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연약한 여자의 몸이지만 기병이 되어 공주를 호위해야했고, 전쟁터에 나가서 수많은 사람을 죽이며 얼굴에 피를 묻혀야 했던 수시아의 사연과 장군이었던 아버지가 전쟁에서 그녀의 아버지에게 패하자 죽임을 당할뻔했지만 사내답다는 이유로 그 집안 밑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항상 바라만 보는 가슴아픈... 신분을 초월한 외사랑을 해온 안도의 이야기는 영원히 가슴 깊이 뭍여있을 것이다.
그들의 사랑이야기는 1권에서보다는 2권에서 절실히 느낄 수 있다.
공주를 호위하는 수시아는 리아와 양덕의 사랑을 바라보면서도 느끼면서도... 자신이 낄 자리는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양덕을 사랑하는 힘든 외사랑을 하지만, 결국 단념해야 된다는 것을 알고 기억상실증이 걸린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그런 수시아의 아픔을 아는 안도는 그녀의 연극도 아무말하지 않고, 쓰다듬어 주고 야마토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목숨까지 버려가며 자신의 사랑을 살려냈다.
언젠가 누가 그랬던가? “어떠한 고통도 만약 죽음이라도 그 사람을 위해서라면 그럴 수 있다”고, 그 말이 그저 나돌아다니는 허풍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안도의 사랑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우리 다음 생에........ 다시 만나자. 그땐 귀족으로 태어나지 마. 내가 맘껏 널... 사랑할 수 있게.
아무리 사랑하고 사랑해도 세상이 우릴 말리지 못하게.... 나 먼저 가서 기다릴게. 다시.............. 만나자. 다음 생에서 만나지 못하면.... 그 다음 생에서, 또 그 다음 생에서....."
수시아를 위해 죽어가면서도, 그 아픔속에서... 그 고통속에서 내뱉어진 안도의 말 한마디..한마디에 내 눈은 쉬지않고 눈물을 떨어뜨렸다. 어쩌면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리아와 양덕이 너무 야속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너무나도 슬프고 더욱더 목이 메일 아픔일 것이다라는 생각은 이 책에 나와있는 너무나도 가슴을 울리는 수시아의 속마음의 묘사를 보고 한 건지도 모른다. 평범한 여자로 살고 싶다는 수시아의 마음은 정말 나를 울리게 만들었고, 너무나 딱한 그녀의 사정에 나는 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고구려에서 나를 울리던 인물들이 있었는가 하면, 비류백제에서는 나를 주먹쥐게 하는 인물들이 있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권력에 눈이 먼 아벌찬과 우정을 깨버린 그의 아들 아사도.... 하지만 아사도는 2권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인물이었다. 사랑의 상처로 외사랑의 아픔으로 타락해져 버린 몸과 마음을 가지게 된 그는 아밀란의 사랑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지만 그녀에게 낙오자의 도장이 찍혀버린 그에게 그녀의 사랑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아버지의 야망에 휩쓸려 온 불쌍한 인물로 볼 수도 있고, 안도와는 달리 바라보는 사랑도 너무 자신까지 더럽혀가며 하는 아사도의 사랑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 무모해 보였다. 친구의 연인을.... 둘 다 서로를 사랑하는 것을 알면서도 단념하지 못한 그의 마음을 조금은 가엽게 볼 수도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자신의 사랑을 지키려고 아버지와 팽팽히 다툼을 하는 것을 보며 사랑이란 놈은..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학생의 신분도 있지만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아직은 사랑을 많이 모르지만 확실히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은 사랑이란 놈에게 잘못 걸리면 누구나 바보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무모한 짓을 이렇게 눈물을 흘려가면서 까지 하는 이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리고 국경을 넘고 넘어가는 왕인과 아밀란의 사랑은 도대체 어디까지 해석이 가능하단 말인가?
이렇게 사랑이란 놈은 국경을 넘게 만들었고,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끊을 수 있게, 그리고 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고통은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었다.
어쩌면 그 깨달음을 얻고나서야 진부적이다고 생각했던 사랑얘기의 드라마도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들의 마음까지도 더욱더 마음속에서 잘 그려졌는지도 모른다.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 웬수는 항상 만나게 되고, 보고싶은 사람은 잘 만나게 되지 않는다”
그런 원리였는지, 왕인이 나니와로 향했을 때는 그리고 그 가깝고도 가까운.. 문 하나만은 사이에 둔 거리는 그들에게는 정말 멀게만 느껴지는 거리였을 것이다. 문을 부수고 들어섰지만 사랑하는 그녀는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이제야 겨우 찾은 사랑느낌이 따스한 것이 아닌 차가움이라는 것에 나는 너무나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미로찾기같던 숨바꼭질같던 사랑의 끝남이 왜그리 허무하고도 가슴에 응어리지게 만들던지, 그 간발의 차이로 사랑하는 여인을 보내야만 했던 왕인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랑한다는 말조차 자주해주지 못했던 연인... 그리고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먼 곳으로 떠나버린 사랑에 그는 어떤 마음을 갖고 있었을까? 왠지 그 부분을 읽으면서 단 몇 장을 남겨두고 나는 또 새로운 생각을 해야했다.
허무한 마음과 공허함... 그리고 왕인의 자책이 느껴졌다. 이렇게 결코 짧다고 만은 할 수 없는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고, 또 고전소설이라는 것이 결코 지루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지금이나 옛날이나 국경과 시대를 초월한 사랑은 한 결 같다는 것을 새삼느꼈다.
나도 어른이 되면 이렇게 천년후를 약속할 수 있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이들처럼 사랑을 위해서면 목숨도 기꺼이 버릴 수 있고, 어떠한 고통도 감수할 수 있을까?
아마도 나는 그럴 수 없는 존재인 것 같다. 그만큼 나의 사랑은 이들의 사랑에 비하면 정말 웃음거리에 불과할 것만 같다. 내가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든 없든 나의 마음을 잔잔히 끌어올려준 이들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만이 갖고있던 그 짙은 향기는 영원히 내 기억속에서 잊어지지 않은 무언가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날 사랑을 함부로 말하는 우리세대 들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다.
“지금 하는 사랑을 천년까지 약속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