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그루의 밤나무를 읽고 나서 천 그루의 밤나무를 읽고 나서…

천 그루의 밤나무를 읽고 나서
저자 : 미라 스타우트
출판사 : 문학세계사
일제 시대의 우리나라..
이제는 공부해야 할 때도 되었는데 여전히 공부에는 맘을 잡지 못하고 도서실에서 `유기화학이 좋아지는 책`이나 `새로운 유기화학` 같은 책을 빌려서 주변 사람들을 경악시키는 짓을 3주정도 계속하다가 끝내 한 권을 다 읽고 다른 한 권은 지루해서 포기해버리고 나서 도서실의 새로운 책 배치에 적응을 못해서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눈에 띈 책이 `천 그루의 밤나무`, 이 책이었다.
두 권짜리에 평소 대는 발견하지 못했던 책이었는데 이쁘게 책장 가장자리에 꽂혀 있던 이 책을, 나는 평소 때처럼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책 이쁘네` 이러면서 한 권을 빼내어 빌렸다.
작가 이름이 `미라 스타우트`였는데 아무 생각 없이 외국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해서 우리 나라와는 관계가 없는 책일 줄 알았는데 정작…(생략)

쩌면 그녀가 예술업에 종사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예술을 하는 사람이 그렇게나 돈에 매달려서 너무나 현실적으로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예술분야에 종사한다고 해서 금전 감각이 없고 낭만적으로만 살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내가 나중에 사회생활을 한다 해도 저렇게 까지나 매달리지는 못할 것 같다..
그녀가 출근하던 가게가 문을 닫자, 그녀는 한국행을 결심한다. 그때 그녀의 어머니가 보인 태도는 그 부분을 보던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평소에는 말해주지 않던 것들을 갑자기 쏟아내면서 그녀에게 꼭 가보고, 꼭 만나보라고 당부했던 모습. 하권에 그 이유가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집안에서는 내쫓겼다고 할 수 있을 상황이었으니 자기 일이 바쁜 것도 있었지만 그녀와 같이 가기에 걸렸던 것이었다. 집안에서 내친 여자. 우리 나라 사람들의 인식으로는 불효 막심한 여자라는 느낌이 강한데, 그녀와 같은-일단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사고관을 가졌으므로 혼혈이라기 보다는 외국인에 가깝지 않을까- 외국인의 시각에서는 어떻게 보였을까? 자기 어머니라서 그런 건지, 작가분이 거기에 대해서는 신경을 안 썼는지 모르겠지만 읽다 보니 궁금해진다.
처음에는 그냥 부분 부분 나눠뒀나 보다 했었는데 나, 어머니, 외할아버지 같이 인물로 구분해 둔 구조라는 걸 인식하게 되자 신기했다. 왜 이렇게 했을까.... 읽어보면 당연히 알 수 있는 것이었는데 왜 바보같이 궁금해 했는지 모르겠다 .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해보니 `나`라고 이름 붙여진 부분보다는 `어머니`라고 이름 붙여진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아무래도 그 부분이 이야기 할 거리가 많았겠지...
`어머니`로 이름 붙여진 부분은 우리 나라가 일본의 지배 하에 있을 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넓은 땅을 가진 양반 집안의 딸. 하지만 어머니가 있던 세상은 변하고 있던 시기였다. 과소비에 병까지 생긴 집안의 장남-어머니의 삼촌-은 이미 집안의 장남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래서 어머니의 아버지가 장남의 역할을 다하게 된다. 넓은 땅을 가지고 있었기에 편안히 생활했었지만 그들의 토지는 모두 일본에게 빼앗기고 갈수록 생활은 어려워져 간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아버지는 중국으로 떠났지만 거기에서도 실패하여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가족들은 그들이 살던 곳(양양이라 기억한다)에서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된다.
서울에서 어머니의 가족들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위안부로 보낼 아이들을 뽑는 부분. 어머니가 다니던 학교는 그 당시에는 꽤 괜찮은 학교에 속하는 것 같았다. 그런 학교에서까지 일본군을 지원하기 위해 자원봉사를 나갈 여학생, 말만 번듯하지 실제로는 위안부였던 여학생들을 모집한다는 것은- 결국 일본이 우리 나라를 도구로만 생각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 같다. 내가 여태껏 들어오던 것도 그랬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학생들의 장점인 발랄함과 생기는 지금처럼 살아있었던 것 같다. 별달리 구속이 심하지 않았던 시기였을지도 모르겠지만 학교에서 몰래 빠져나가 빵을 사먹으러 간다던가 하는 것은 요즘 학생들도 마찬가지니 말이다.
그런 시기에서 자신의 오빠가 마약-아편이었던 것 같다에 중독되었다는 건 어머니의 상황과는 다른 현실 속에서 살아갔던 모습을 대변해 주는 것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일제 하의 학생의 생활 특히 어머니의 오빠 나이의 생활은 세가지 정도로 갈라지는 것 같다. 조국을 위해서 독립운동을 해보든지 그냥 그대로 조용히 살아가든지 아니면 아예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냥 되는대로 살아가든지. 자기가 하고싶은 것을 하며 살고싶은데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고 자기 나라의 말도 제대로 못쓰면서 살아가야만 하는 그런 이중의 스트레스를 견디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어떻게 했을지는 그런 상황이 되어보아야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마다 틀린 경우를 보일 테니까..
일본이 물러가고 난 후 그들은 다시 6.25전쟁을 겪는다. 대통령은 서울을 빠져나갔으면서 서울에 있는 국민들에게는 자기 집에 있으라는 방송을 틀었던 그 당시의 정부. 왜 그렇게 했을까? 그때는 지금만큼 국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시대라고 평소에도 생각해왔었다. 하지만, 그렇게나 소중히 여기지 않는단 말인가? 대통령 자신은 이미 서울을 빠져나가 남쪽으로 이동해 가고 있었으니 서울에 있는 사람들이 상황을 알고 서울 밖으로 이동한다 해도 자신에게는 피해가 없을 텐데. 예전에 한번 이 사건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소설에 이 상황이 나오는데 화가 났다. 우리 나라의 정부는 고작 이런 짓밖에 하지 못했단 말인가. 두 번이나 파괴되었다는 다리. 자신들만 빠져나가고 남들은 죽게 하려고, 자기를 받들어주고 지지해주던 사람들은 다 필요 없다는 식의 생각. 지금 우리 나라를 다스려가고 있는 사람들이 하고 있는 생각일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화가 나는 것일지도..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에 대해서 잠시 말하는 글이 있었다. 거기에서는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이 책에서 말해놓은 거라고 잠시 본 것 같은데, 나는 이 글에서의 `나??가 겪는 일 보다는 어머니가 겪는 일이 더 기억에 남는다. 내가 책을 잘못 읽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읽고 있는 책들이 유난히 우리 나라가 급변하던 시기를 다루고 있어서 몰랐던 사실들을 조금씩 알게 되고 어렴풋하게 알고 있던 사실들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생생하게 알게 되는 것 같다. 우리 나라의 근대 역사에 대해서는 유난히도 무관심 했던 나였는데, 이런 계기로 좀 더 알게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긍지보다는 애통함이 더 강해지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