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의 탁류를 읽고나서 탁류를 읽고

채만식의 <탁류>
내 중학교 시절의 마지막 독서노트를 조금 더 화려하게 장식하고 싶어서 평소에는 잘 읽지도 않던 긴 장편소설인 탁류를 읽기로 했다. 장편소설은 무정 외에는 한 권도 읽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런지 탁류라는 책을 처음 본 순간 깜짝 놀랐다. 약 500쪽 정도 되었는데 내가 전에 한번 읽었던 무정보다도 무려 100쪽이나 더 많은 쪽수였다. 설마 이 책 한 권이 소설 전체는 아니겠지 하면서 책을 보았는데 정말로 책 한 권에 하나의 소설이 빽빽하게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다른 책을 읽을까하다가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고, 언젠가는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기 때문에 그냥 읽기로 했다.
채만식의 <탁류>는 《조선일보》(1937)에 연재된 작품으로, 일제치하라는 우리 역사의 좌절과 암울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작품이다.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 곧 청류로 흐르게 할 수 있는 희망을 제시…(생략)

머리에 등장하는 인물은 정 주사인데, 이 사람은 주인공의 아버지이다. 그는 중농이었다가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여 미두장의 하바꾼으로 떨어져버렸다. 그에게는 맏딸인 초봉이를 시작해서 4남매가 있다. 게다가 그는 아무 능력도 없고 맏딸인 초봉이 혼자서 식두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정 주사의 친구인 박제호라는 작자밑에서 일을 한다. 난 정말 이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이 답답해진다. 도대체 대책이 서지 않는 남자다. 그만큼 많은 아들딸들을 뒀으면서도 그만한 능력도 없어서 온 식구를 굶기고 있으니 말이다. 정말 흥부랑 다른 것이 전혀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흥부처럼 착하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이 사람은 이 소설의 물질 만능주의에 휩싸인 부정적인 인물중의 하나이다. 나중에는 딸까지 팔아먹는다. 이렇게 몰지각하고 인정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아주 악독한 인물이라고, 나는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
초봉이는 자기 집의 하숙생인 남승재라는 인물과 사랑에 빠지지만, 지금 당장의 물질적 도움을 기대하는 정주사의 강권(强勸)에 의해 은행원 고태수와 결혼하게 된다. 방금 앞에서 말했듯이 정 주사는 말로는 결혼이라고 하지만 돈에 눈이 어두워 자신의 딸인 초봉이를 파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정 주사는 두 말할 필요없이 악독하고 아주 나쁜 인물이지만, 초봉이 역시 아주 답답한 인물이라고 생각된다. 초봉이는 언제나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 못하고 남의 말을 잘 따르기만 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자신이 무얼하든 간에는 상관도 없고, 남이 어떻게 되는지 에만 신경을 쓴다. 즉, 무책임하다고 하면 정확할 것이다. 남을 배려하고 도와주는 성격도 좋지만, 그러한 성격이 너무 지나치다보면 이 소설의 주인공인 초봉이처럼 잘못된 것은 고치려 하지도 않고, 개혁적인 마음이라곤 절대로 찾아볼 수 없는 인간이 되어버리고 만다. 사람은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분명히 말해서 다른 사람을 설득시키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 여자는 끝까지 사고 팔리고 버려지기까지 하면서 이 사회의 희생자로서 남게 된다. 한편으론, 너무나도 가련한 마음도 든다.
불행적인 삶의 실마리인 고수태에게 시집가서 행복하게 살 것 같던 초봉이는 열 흘이 지나서, 고수태가 정 주사의 친구의 아내인 김씨와 불륜을 하게 되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더 심한 것은 꼽추 장형보라는 인물에게 겁탈까지 당한다. 그래서 고수태라는 자는 김씨의 남편인 한 참봉에게 맞아 죽고, 과부가 된 초봉이는 박제호를 따라서 서울에 올라갔다가 박제호의 첩이 되어버린다. 이 장면에서는 초봉이가 정말 불쌍하게 보인다. 고수태나 꼽추 장형보, 박제호라는 아주 나쁜 인물들 사이에 껴서 마치 장난감 다뤄지듯 그들이 원하는 대로 놀아나니 말이다. 처음에는 그 세사람 모두 좋은 사람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일순간의 착각이었다. 고수태는 겉으로는 굉장히 얌전하고 돈도 잘 버는 인물로 나와있으나, 실제로는 항상 기생을 끼고 다니고, 거짓말도 밥먹듯이 하고, 예금액이나 훔쳐가지고 다닌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나오겠지만 꼽추 장형보는 아침이나 낮에는 굉장히 친절하고 착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밤에는 초봉이를 가만히 내버려두질 않는, 그러니까 자신의 욕구만을 충족시키려는 아주 악독한 인물이다. 그리고 박제호라는 인물도 만만치 않다. 겉으로는 초봉이를 그냥 우호적이고 친딸같이 여기는 것 같지만, 첩으로 들였다가 나중에는 싫증이 나자 꼽추 장형보에게 팔아버린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세 사람이 겉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굉장히 부패하고 썩어있는 이 시대(일제 강점기)의 내면세계를 나타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초봉이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송희라는 딸을 낳게된다. 이때부터 초봉이는 그나마 약간의 고립된 행복을 느끼게 되지만 사회는 이 여자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앞에서 말했듯이 박제호로부터 꼽추 장형보에게 팔려 장형보가 자식의 양육권을 주장하고 나섬으로써 그녀의 가정은 다시 파괴되고, 자신의 운명을 파멸시킨 지칠 줄 모르는 형보의 정력으로 말미암아 반 년 동안에 아주 볼썽 없이 바스라지고 말 아니게 시들게 된다. 난 이 세상에서 그 사람의 자식을 가지고 뭐라고 욕을 하거나 꼬투리를 잡아서 꼼짝 못하게 하는 사람이 굉장히 싫다. 모두들 자신이 낳은 자식은 귀엽고 그 자식으로써 행복을 느끼게 된다. 속담에도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한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라는 속담들이 있는데 어느 누가 자신의 자식을 욕하고 못살게 구는데 좋아하겠는가. 자신에게 부모나 자식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들 그 마음을 알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장형보에게 아주 무서울 정도로 증오감을 느끼기도 했다.
결국, 초봉이는 참지 못하고 장형보를 죽이게 된다. 그리고 그 현장을 본 초봉이의 동생 계봉이와 계봉이의 연인이자 초봉이와 서로 좋아했던 사이인 남승재가 보게 된다. 그리고 자수할 것을 권유당한다. 승재가 계봉이와 연인 사이인 것을 모르고, 아직도 자신을 좋아하는 줄만 아는 초봉이는 자살을 포기하고 ‘명일의 약속’에 기대를 걸고 자수하고 징역을 살기로 결심한다. 이 마지막 장면은 역사의 어두운 탁류가 밝고 맑은 청류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어 밝은 미래가 오리라는 희망을 암시하는 것 같다.
이 작품을 통해서 일제 강점기의 서민층들의 처절한 아픔과 치욕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는 아직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지금 사람들은 돈의 노에가 되어 물질 만능주의에 휩싸여 있다. 그래서 돈이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하는 그러한 이기주의가 발생하였고, 이어서 사대주의까지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마치 당연하듯이 우리의 사회에 너무 깊이 박혀있다. 따라서 한 번 퍼지는 독을 막기 위해 손이나 발을 절단하듯이 이러한 현상들을 막기위해서는 희생은 클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완전히 자리잡아서 사람들에게서 더 이상 인정이라고는 절대로 볼 수 없는 그러한 사회가 되는 것 보단 낫다. 돈은 인간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일 뿐이다. 누구 말 맞다나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절대로 그런 것들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러한 것들을 뿌리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 각자의 마음도 중요하지만 서로 힘을 모아서 협동하여 이겨 나가려는 정신, 그러한 정신이야말로 이러한 사회를 밝고 명랑한 사회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