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E.H.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고 감상문을 쓰는 방학숙제를 위해서 쓰게 되었다. 지난 방학 때, 이 책을 한번 읽다가 포기한 적도 있었지만 이번엔 기필코 끝까지 읽는데 성공하리라 굳게 다짐하고 읽어가기 시작했다. 이 책은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을 하기 위하여 전체를 6개의 소단원으로 구성하고 있다. 그 중에서 3가지 정도로 구성할 것이다. 3매가 제한이기 때문에...
역사에서의 인과 관계Part
역사의 연구는 원인의 연구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건은 단일한 원인만을 갖는 것은 아니며 여럿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역사가들의 임무는 이것들을 파악하고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정리한 후 이것들간의 상호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위대한 역사가란 새로운 사물에 대해서 또는 새로운 상황에 처했을 때에 `왜`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사건의 원인을 규명해야 할 경우 역사가는 실제로 어떠한 일을 하게…(생략)

높았다는 말과 같은 것이며 따라서 이러한 불가피성에 대한 반발은 무의미한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에서의 우연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클레오파트라의 코`라는 유명한 난문으로 대표되는 이 주장에는 역사는 어느 모로 보나 우연의 연속이고 우연의 일치에 의해 결정된 전적으로 우발적인 원인의 소치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사건의 연속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우연은 확실히 존재한다. 게다가 이것은 종종 중요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연이 단순히 역사를 촉진시키거나 진행시킬 수 있을 뿐 변경시키지 않는다는 주장은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이 Carr의 견해이다. 우연한 사건이라고 해서 완전히 은폐하거나 또는 아무런 영향력이 없었던 것처럼 꾸밀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연은 엄밀히 말해 역사가의 연구대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연한 사건들은 역사가가 인정하는 중요 원인들의 계열에 속하지 않으며 따라서 합리적으로 해석될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역사는 역사가에 의해 사실이 선택, 정리되어 역사적 사실로 될 때 비로소 시작된다. 어떤 사실이든 일단 그 적합성과 중요성이 인정되면 곧 역사적 사실이라는 지위로 승진되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가와 원인의 관계는 역사가와 사실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이중의 상호적 성격을 갖는다. 즉 원인은 역사적 과정에 대한 역사가적 해석을 결정하는 동시에 역사가의 해석은 원인의 선택과 정리를 결정한다. 역사가는 과거의 경험, 곧 자기의 손이 미치는 한에 있어서의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합리적인 설명이나 해석에 적합하다고 인정되는 부분을 골라내고 여기서 행동의 지침이 될만할 결론을 이끌어낸다. 결국 역사란 역사적 의미라는 관점에서 본 선택과정이다. 역사가 사실의 무한한 대해로부터 자기 목적에 대해 의미 있는 사실들을 골라내는 것처럼, 원인과 결과의 무수한 연쇄 가운데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것, 오직 그것만을 뽑아낸다. 그리고 우리는 역사에서의 합리적인 원인과 우연적인 원인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가가 자기 목적에 맞는 의미 있는 사실을 골라내고 더 나아가 이것들로 형성되는 원인과 결과의 무수한 연쇄들 가운데서도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만을 뽑아내고자 할 때 우연이 들어설 자리는 없는 것이다.

역사가와 사실Part
일반적으로 역사라 불리우는 것에는 엄밀히 말해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추상적 실재로서의 역사(과거의 현실 전체)가 그 하나이고 또 하나는 구체적으로 인식된 역사(알려진 과거의 사실 또는 역사적 사실)이다. 역사는 말하자면 `이중성`을 지니는 것으로 어떤 형태로든 기록되지 않는 과거는 역사가 아니라는 점에 유념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의 기록은 대개 역사가들의 몫으로 남겨지게 되는데 역사서술에 있어서의 사실성 여부가 중요한 문제로 자리잡게 된다. 즉, 사실이란 그것이 문서로 씌어졌는가 아닌가의 여부에 관계없이 역사가들의 손을 거친 다음에야 역사가들에 의해 이용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사실과 문서는 역사가에게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사실이나 문서를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것은 곤란하다. 왜냐하면 사실이나 문서가 스스로 역사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50년동안 역사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있었다. 그리고 크로체라는 학자는 모든 역사는 현대의 역사라고 선언하기도 하였다. 이는 역사란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을 통하여 또한 현재의 문제에 비추어 과거를 봄으로써 성립되고 역사가의 주임무는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평가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역사가의 마음속에서 행해지는 과거의 재구성은 경험적인 증거에 의거한다. 이 점에 있어서 오우크쇼트 교수는 "역사는 역사가의 경험이다. 역사는 오로지 역사가에 의해서만 만들어진다. 역사를 쓰는 것만이 역사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이 날카로운 비판은 몇가지 잊혀졌던 진리를 밝혀주게 된다. 첫째, 역사의 사실은 기록자의 마음을 통하여 항상 굴절되기 때문에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도 않고 또한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에 결코 순수한 것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없다. 두 번째는 더 잘 알려진 것으로서 역사가는 자기가 연구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그들의 행위 밑에 깔려있는 사상을 상상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역사가가 자신이 쓰고 있는 사람과 어떤 형태로든 마음의 접촉을 갖지 않는 한, 역사는 씌어질 수 없다. 세 번째, 오직 현재의 눈을 통해서만 우리는 비로소 과거를 볼 수 있고 과거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역사의 사실과 역사가와의 관계를 검토해 보면서 우리는 두 가지 이론 사이에서 진퇴유곡에 빠져 어쩌지 못하는 위태로운 상황에 도달하게 되었다. 역사를 사실의 객관적인 편찬이라고 생각하고 해석에 대한 사실의 무조건적 우월을 주장하는 타당치 못한 이론과 역사의 사실을 확립하고 해석과정을 통해 이를 지배하는 역사가의 마음의 주관적인 산물을 역사라고 주장하는 타당치 못한 이론이다. 하지만 역사가와 사실과의 관계는 평등의 관계이고 서로 주고받는 관계이다. 그리고 역사가란 자기의 해석에 따라 사실을 형성하고 자기의 사실에 해석을 형성하는 끊임없는 과정에 매달려 있다. 양자중의 어느 한쪽만을 우위에 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역사가와 역사의 사실은 서로 꼭 필요한 것이다. 이리하여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저자의 대답은 결국 다음과 같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 즉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넓어지는 지평선Part
`역사란 무엇인가`란 물음에 대한 고찰을 마무리하면서 Carr는 현재와 미래를 검토함으로서 현대에 있어 역사와 역사가가 처해 있는 위치를 점검하고 있다. 20세기 중엽은 Carr에 의하면 근대 세계의 기초가 형성된 15~6 세기 이래 가장 깊이 있는 그리고 광범위한 변화의 시대이다. 그리고 이것은 특히 사회혁명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으로는 현대 세계로의 전환이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이것은 각 시대별 철학자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우선 18세기의 대표적 철학자는 헤겔과 마르크스였는데, 두 사람은 대립되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헤겔의 세계 정신은 한 손으로는 섭리를, 또 한 손으로는 이성을 꽉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헤겔은 기호는 만들어 놓았으나 여기에 실제적인 내용을 부여하지는 못했다. 이에 실제적 내용 부여의 일을 한 사람이 바로 마르크스이다. 마르크스는 세계가 합리적인 자연 법칙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하였다. 이는 헤겔보다 훨씬 더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형태를 취한 것이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역사를 다음의 세 가지 것이라고 의미하게 되는데 첫째는 객관적인 법칙, 둘째는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이룩되는 사상의 발전, 셋째는 계급투쟁이라는 형태의 행동이라는 것이다. 이성의 세계에 새로운 영역을 넓혀 준 또다른 사상가는 바로 프로이트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을 사회적인 존재라기보다는 오히려 생물학적 존재로 보았으므로, 사회적 환경도 인간 자신에 의한 창조와 개조의 끊임없는 과정으로 다루지 않고 역사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다루는 경향을 갖고 있었다. 프로이트 자신은 비록 인간의 본성이 고정 불변하다는 관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인간 행위의 근원을 좀더 깊이 이해함으로써 합리적 과정을 통해 이러한 근원을 의식적으로 변경시키는 도구를 마련해 주었다는 의미에서 현대 세계에 속하는 사람이다. 결론적으로 이성의 기능과 힘의 새로운 영역으로의 확대가 인간 생활 각 방면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의 외형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러시아를 포함한 동구가 세계사의 전면에 등장하여 존재를 과시하고 있는 바, 세계의 중심은 이제 더 이상 서구가 아닌 것이다. 이러한 상황 인식에서 Carr는 자신이 속한 사회, 곧 영국 그리고 나아가서는 영어 사용권 내부로 눈을 돌려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보수와 진보의 대립 구도를 통해 성찰하고 있다. 여기서 Carr는 보수주의가 만연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고 진보적인 자세와 자신감의 회복을 적극 부추긴다. 인간 역사의 진보는 기존 제도에 이성의 이름으로 과감히 도전할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인 바, 그 같은 용기를 되찾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념에서 낙관주의자 Carr는 영국의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상으로 역사란 무엇인가의 질문에 대하여 6가지 소주제로 나누어 Carr의 의견을 알아보았다. 솔직히 나에게 있어 이러한 글들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다양한 인용과 설명을 들어서 주장에 대한 설득을 느끼게끔 하지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 예시들이나 인용문들 대부분이 영국이나 유럽사의 어려운 내용들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작가가 그쪽 사람이었기에 영국 또는 유럽을 중심으로 서술하는 것이 불가피했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조금만 더 일반적인 글을 써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그 중 가장 생각나는 문장은 "역사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이다. 아직은 이 짧은 문장 하나 이해하기에도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그래도 책 한 권을 읽고 나니 머릿속으로나마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내용도 다소 난해하고 어려웠기 때문에 이것들을 모두 이해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하게 알고 느낀 것은 역사 서술에 있어서의 역사가의 역할,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역사가들이나 역사에 대한 생각들이다. 역사를 단순한 과거 기록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좀더 넓고 깊은 의미로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