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삼국지

삼국지 - 대륙을 종횡하던 영웅들의 이야기
3번 읽은 사람과는 상대하지 말라 - 라는 격언이 있을 정도로 이젠 이미 온 국민의 대중필독서가 되어버린 책이 있으니 바로 삼국지이다. 이젠 역사소설을 뜻하는 고유명사화 된 것은 물론이고(이러한 ‘삼국지’류의.... 이런 ‘삼국지’식의 이야기는...), 평범한 일반인들중에 유비, 관우, 장비, 그리고 제갈공명의 활약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과연 삼국지의 그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이토록 열광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삼국지를 비판하거나 평가하기에 앞서 순수하게 삼국지를 읽으면서 느꼈던, 삼국지의 매력들 - 먼저 그것들을 생각해 본 뒤에야 우리는 진정으로 삼국지를 한번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삼국지에는 무용이 있다. 관우, 장비를 비롯해 여포, 마초, 허저 등등 이름도 쟁쟁한 무장들의 화려한 무용과 일기토, 대결 이야기들은 본인에게도…(생략)

이 읽으면서 감동을 받을 수 있는,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또한 삼국지에는 전략이 있었다. 신출귀몰한 사마의나 주유, 육손의 전략들과 신의 경지에 다다른 제갈 량의 전술은 보면 볼수록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절대로 정형화될 수 없었던 수많은 전략, 전술들과 치열한 두뇌싸움은 현대의 스릴러에 비견될 만하다. 거기다가 제갈 량조차도 맛보아야 했던 여러 번의 패배 장면은 ‘완벽한 인간은 없다’ 라는 경각심마저도 일깨워주는 듯했다. 주위의 지형지물을 적절히 이용하고 100명으로 1000명을 이기는 전술 - 이것이야말로 지식인 계층에서도 삼국지가 읽히고 연구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삼국지에는 역사가 있었다. 지금 나와있는 수많은 판타지들을 보면 삼국지보다 얼마든지 더 황당한 무용과 지모, 인간관계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삼국지다 그들보다 위쪽에 놓이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 ‘역사’라는 형태로 검증받은 ‘진실’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완전히 허황된 꿈이 아닌, ‘실제로 이랬던-’ 이야기들이니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작품 내의 한 인물에 투영시켜 그들의 삶을 본보기로 하여, 또는 그들과 동화되어 몰입하는 모습들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최고의 평가를 받는 역사소설 삼국지이지만 또 이것만큼 역사 기록의 아이러니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도 드물다. 또한 이 역시 하나의 소설로써의 문제점이 곳곳에 드러나고 있다. 과연 삼국지는 우리가 생각했던 대로 ‘완벽한’ 책일까?
우선 본인이 이 책을 수십 번에 걸쳐 읽어오면서 느끼게 된 것은 이 책의 너무도 강한 영향력에 대한 걱정이었다. 소위 ‘매스 미디어에 의한 대중의 의식 조작’ 과 같은 현상이 이 책에 의해서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한 예를 들어 우리들이 보편적으로 알고 있던 대로 조조가 간사하고 꾀부리는 인물에 불과할 것일까? 오히려 그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었다는 데에 대해서는 학계의 이견을 찾기도 힘들다. 그는 시를 사랑하고, 그 자신도 상당한 경지에 오른 건안 칠자의 일원이었고, 부하들을 사랑하고 인재를 아껴 수많은 인재가 구름처럼 그의 휘하로 모여들었으며 신출귀몰한 전략이나 뛰어난 행정 수완 등등 그야말로 ‘영웅’ 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좀 더 깊이 파고들어 가다 보면 역사 기록의 아이러니라는 문제와 마주치게 된다.
‘촉한 정통론’을 주장하며 유비와 촉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던 나관중도 그렇지만 정사 역시 별로 믿을 만한 것은 아니다. 정사를 기록하였던 서기의 아버지가 제갈 공명에 의해 전사하였기 때문에 그는 촉이나 유비에 대해 비판적으로 쓰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아주아주 공정한 서기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곳에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진정한 하류계층의 역사를 알아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예전같은 시대에 글을 쓰고 읽는다는 것은 이미 상당한 계층, 지식인임을 드러내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으로 우리가 원하는 서민들의 역사 - 그들의 삶, 즐거움, 그들이 역사의 움직임을 바라보던 태도 - 그 모든 것들은 그저 ‘추측’ 또는 윗사람들의 관측에서 내려다본 ‘관찰’ 만을 토대로 할 수 밖에 없다. 이상적인 기록자의 관점도 이럴진대, 결국 ‘인간’이니만큼 주관성을 배제할 수 없는 현실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과연 진짜 역사는 어떠했을까? 약 20~30여년전의 역사도 미궁 속에 빠진 것들이 수두룩한데 수천년 전의 역사를 정확하게 알고 싶다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지나친 욕구일지도 모르겠다.
삼국지의 또다른 맹점은 자신의 의견이나 재미를 위해 진실을 외면한 점이 약간씩 보인다는 점이다. 위에서 언급된 역사 기록의 아이러니의 일부분일지도 모르겠지만 여러 가지 부분에서, 특히 조조는 폄하하고 유비를 올리는 부분들에서 그의 이러한 단점이 많이 드러나고 있다. 한 예로 마초가 조조에게 아버지의 복수전을 감행했을 당시(위수 전투) 소설과는 다르게 그가 조조를 그렇게까지 궁지에 몰아넣은 일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연의의 기록에서는 마치 조조를 거의 죽음의 경지로 몰아넣었던 것도 여러번에, 수많은 패배를 조조에게 안기고 내부 배신으로 안타깝게 패한 것처럼 묘사되었다. 거기에 덧붙여, 재미를 위해서 실제 그렇지 않은 이벤트를 첨가하거나 변형시킨 부분들도 보인다. 제갈량이 주유를 도발시켜 조조와 싸우게 만들기 위해 동작가를 읊었다는 이야기나 전투 중의 잔잔한 이야기들(촉의 장수들이 점을 보니 봉추가 죽는다는 내용의 점괘가 나왔다던가 하는 이야기들)의 대부분은 허구이다. 소설적 재미를 위한 장치의 하나라고 넘겨버릴수도 있겠지만 그걸 읽고 마치 그것이 진실인 양 이야기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약간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면 여기서 또다시 심도 있는 질문이 머리 속에 떠오르게 되었다. “소위 ‘역사소설’같은 소설들에서 허용될 수 있는 허구적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 바로 이것이다. 다른 요소들을 배제해버리고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소설은 이미 기본적으로 ‘허구’라는 바탕을 깔고 있는 글이다. 소설의 목적은 우리에게 어떠한 정보나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있을 법하지만 가상적인 이야기 속에서 삶의 진리, 또는 감동을 전달하는 글인 것이다. 이런 글에서 ‘허용되고’ ‘허용되지 않는’ 허구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즉 위에서 본인이 마구 비난을 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소설으로써는 당연한 일이다. 위대한 영웅들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나 그의 사상 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삼국지라는 역사적 틀을 빌려썼을 뿐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면 문제는 무엇일까? 바로 소설의 내용을 마치 진실처럼 받아들이는 독자들의 의식이 문제이다. ‘소설’ 이라는 말이 내포되었을때부터 우리들은 이 책이 100%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켜야 한다. 김진명씨의 소설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나 황태자비 납치사건 - 이들은 모두 가상적인 일이다. 그의 소설의 구성이 훌륭하긴 하지만, 그들을 읽고 황태자비가 납치당했었다느니 우리나라가 핵을 보유하고 있다느니 하는 것이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 ? 즉, 결론적으로 삼국지를 읽을 때 허구가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또한 이것을 역사책의 일종처럼 읽지 않고 하나의 소설로써 읽는 자세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관중이 주장한 ‘촉한정통론’ - 삼국지를 많이 읽은 청소년층, 일반인층 사이에는 이젠 거의 진실처럼 굳어져버린 이론이지만 이것 또한 상당히 많은 약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평가할 때, 이미 그 힘이 다한 한 왕조를 다시 일으키고, 충성하려고 노력하는 일이 과연 훌륭한 일이었는가? 만일 그 일이 옳고 정의로운 일이라면 그 전에 있었던 수많은 역성혁명이 정당화될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엇을까? 아무리 좋은 체계도, 정치구조도 시간이 지나면 그 약점과 폐단이 드러나게 마련이고 그것을 수정하는 과정이 바로 왕조의 교체인 것이다. 거의 완벽한 공화정의 표본이었다는 로마도 그랬고 세계에서 가장 넓은 땅을 차지했던 대몽골제국도 그러했으며, 신라의 폐단을 딛고 일어서려 했던 고려와 조선도 그러했다. 이러한 소위 ‘하늘의 뜻’을 거스르고 옛 것에 집착하려 했던 유비 ... 과연 그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일까? 한번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위와 같은 요인들 때문에 이 이문열 삼국지 식의 삼국지가 다른 삼국지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듯하다. 이문열 씨의 친절한 해석이나 정사와 다른 점에서 일일이 비교를 해 놓은 구문들 덕분에 위와 같은 ‘진실’을 알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가? 이러한 ‘진실’의 개입으로 인해 오히려 ‘허구’를 읽는 즐거움이 한층 더해질 수 있었던 건 나만의 생각일까?
이것이 바로 삼국지였다 - 역사가 있고 사랑이 있으며 정의가 있고 영웅들이 있었던 위대한 동양의 대 서사시. 수십번을 읽어도 질리지 않고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는 책이지만, 수많은 느낌이나 생각들 가운데에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이 이야기들이 모두 진실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위대한 책이지만 이 역시도 우리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써진 소설책이다. 한 권의 역사책이 아닌 한 권의 소설로써 삼국지를 읽을 때 - 그때야말로 진정한 삼국지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