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따라기를 읽고

<배따라기>의 원래 의미는 사신이 외국으로 떠날 때 행하였던 춤의 이름이었다. 혹은 그 춤을 부르는 곡조를 지칭하였다. 그러나 김동인의<배따라기>에 나오는 <배따라기>노래는 사신의 행차와는 관계가 멀다. 잠깐 소개되는 가사에는 구슬픈 뱃사람의 한이 서려있을 뿐이다. 뱃사람이 된 서러움이 애절히 가락에 얹혀져 있을 따름이다. 소설 내용도 배따라기의 가사가 상징하듯 애절한 뉘우침과 돌이킬 수 없는 회한으로 채워져 있다.
<배따라기>를 이미 읽어 본 사람이면 질투심 많은 형이 활달한 그의 아내와 호남형인 아우를 의심하여 돌이킬 수 없는 한을 남기는 애절한 사연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만일 우리에게 누가 그 소설의 주인공이냐고 묻는다면 그야 물론 형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소설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 보면 형식적인 주인공은<나>이고 <그>의 이야기를 내가 전달하는 식으로 소설이 짜여져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생략)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액자가 더 정확하게 기억에 남는다면 그 소설은 잘못된 것이다. 그림 보다도 액자에 눈이 먼저 간다면 그림은 보잘것 없다는 의미와 같은 것이다.

김동인은 평양 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초년 시절에는 부모의 총애를 받으며 유아독존적으로 호강을 하며 자란 사람이다. <배따라기>에 나오는 형이나 동생과 같은 인물과는 애초에 관계가 없다. 이런 작가가<배따라기>와 같은 내용을 썼다면, 분명 누구에겐가 들은 것을 꾸며서 이야기 한 것이라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만일 만의 하나라도 이런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실패작이나 다름없다. 비록 재미있게 썼다고 하더라도 한낱 재미있게 꾸민 이야기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겠기 때문이다. 인생의 진실을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만일 작품을 읽어가면서 그 내용에 대하여 설마 그럴 리가 있을라구 하고 넘김다면 인생의 깊은 의미를 전달하는 데는 실패하게 된다. 그것은 독자에게 헛된 시간 낭비만 시키게 된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처럼 내가 대동강변에 올라 봄날씨를 감상하다가 배따라기를 부르는 소리에 끌려 소리의 진원을 찾고, 거기서 배따라기를 처량하게 부르는 그를 만나 그로부터 구슬픈 영유 배따라기에 얽힌 사연을 듣게 된다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그 사실이 진실이겠거니 하고 믿게 되는 것이다. 어느덧 액자부분은 잊게 되고 본래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액자소설의 기교를 썼기 때문에 <배따라기>의 내용이 보다 효과적으로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이지만, 만일 그렇다고 그 내용이 보잘 것 없다면 우리는 그것을 금새 잊어버리고 말 것이다. 마치 전시된 그림이 보잘것 없다면 사람들은 그림 앞에 오래 발길을 멈추지 않거나, 아니면 보고서도 금새 잊어버리고 마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하겠다. 이와 더불어 배따라기의 사연은 우리의 마음에 또 다른 이유에서 뚜렷이 기억된다.

그것은 배따라기에 우리가 예전부터 익히 좋아하는 원형적 내용이 실려져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원형이 우리의 신화적 심상을 자극하기에 독자는 그 내용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신화적 심상이라고 하니 좀 어려운 것 같지만, 쉽게 말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감동을 받는 원형적인 요소가 이 작품에 내재한다는 말이다. 곧 이 작품은 누구나 공통적으로 흥미를 느끼는 사건을 작품에 담고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남녀의 삼각관계를 일컫는다. 한 여자를 두고 두 남자가 결투를 한다든가,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두 여자가 투기를 하는 삼각관계의 원형은 옛날부터 끊임없이 있어온 것이고, 어떤 무엇보다도 인간이 살고 있는 모습 중에서 우리의 흥미를 자극하는 요소였다.

<배따라기>에서 삼각관계가 기본 모티브이면서도 그것이 못난 형과 호남인 아우가 형수를 사이에 두고 갈등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인상깊게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친족 간에 존재하는 삼각관계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 없이 이어져 내려온 문학적 소재이기도 하다. 그만큼 우리 실생활에서 이런 일이 많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개연성이 풍부하다는 뜻일 것이다.

김동인은 이런 신화적 원형을 작품에 끌어 들이면서, 액자소설로 큰 틀을 잡고 난 후 작품 내용에서도 또 하나의 기막힌 기교를 비수처럼 마련해 두었다. 쥐를 통한 극적인 장면의 연출이 그것이다. 평소에도 동생과 아내의 관계를 질투해 오던 형이 결정적인 증거를 잡게 된 것은 그가 시장에 가서 아내가 그렇게 갖고 싶어하던 거울을 사가지고 온 바로 그 순간이었다. 둘이 떡상을 마주하고 헝클어진 모습으로 형을 맞이하며 당황하는 모습은 그간의 사건 진행으로 보아 형이 오해하기에 충분할 만한 것이었다.

그런데 만일 소설 내용에서 동생과 아내가 부정한 관계로 맺어진 것이 사실이고, 그로 인해 동생과 형이 사투를 벌이고, 동생이 그의 아내를 데리고 형 몰래 야밤에 도주하였다면 이 소설은 통속소설로 끝났을 것이다. 작가는 통속 소설로 끝날 수도 있는 소재를 독특하게 꾸며 순수문학 작품을 만든 것이다. 동인의 소설가적 기질은 이런 상식을 뛰어 넘어 충격을 줄 장치까지 마련하고 있다는 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김동인은<배따라기>에서 의심이 가는 장면에 변명거리로 쥐를 등장시켜 아우와 아내의 관계를 더욱 의심케 한 후, 이것을 뒤집어 엎는 장치로써 실제로 쥐를 튀어 나오게 만들었다. ??역시 쥐댓다??라는 한마디는 그 무엇보다도 충격적이고 감동적이다. 결국, 아내는 죽게 되고, 동생은 집을 떠난다.

형이 동생을 애타게 찾아 헤매고, 어느날 형이 탄 배가 난파하여 해변에 기진하여 쓰러져 사경을 헤맬 때 동생이 나타나 그를 살려낸다. 불을 피워놓고 실신한 형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생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것을 상상할 수 있다. 동생은 형이 혼절에서 깨어나 자기를 간호하고 있는 것이 동생임을 확인하고 안심하여 잠들었을 때 다시 떠난다. 여기에서 우리는 동생의 한이 얼마나 깊은 것인가를 새삼스럽게 깨우칠 수가 있다. 안타까운 모습이지만, 바로 이것이 소설이고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참 모습이기도 하다.

<배따라기>의 사연이 끝난 후 이야기는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그는 나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 준 후 다시 동생을 찾아 떠난다. 액자가 마무리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나 액자를 기억할 필요는 없다. 그림만을 생생하게 떠올리면 되는 것이다. 실제 주인공은 기억에서 사라지고 형과 아우의 삼각관계만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기에서 우리는 인생의 진실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의 어리석음, 곧 질투의 미숙함이 저지른 돌이킬 수 없는 회한과 뉘우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이 소설의 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