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앞의생 자기앞의생

자기앞의 생을 읽고
`자기 앞의 생`이란 무엇일까. 나는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 `자기 앞의 생`이란 자기 앞에 놓여져 있는 삶이다. 그 삶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행복한 미래가 될 수도 있고, 어쩌면 힘써 넘어가야 할 산일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진로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에 있는 만큼, 나에게 이 책의 제목은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 책의 표지 그림 또한 특이하다. 허름한 상자에 장미가 피어있고, 거기에 다리가 달려 어디론가 달려가는 모습이다. 이 그림은 이 책의 주인공 모모와 비슷하다. 겉은 비록 초라할 지라도, 안에 향기로운 장미와도 같은 사랑을 가지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 모모는 엘리베이터도 없는 허름한 건물 7층에서 창녀나 빈민가의 아이들을 돌보아 주는 로자 아줌마와 함께 살고 있다. 로자 아줌마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 수용소…(생략)

모모는 희망과도 같은 것을 맛본다. 사람에게는 이해와 사랑이 존재한다는 그런 것. 그래서 모모는 자신의 친구들이 뚜쟁이가 되고, 마약을 하고, 타락의 길로 빠지는 와중에서도 사랑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찾아온 이후, 갑자기 네 살을 더 먹어버린 모모는 산다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많이 알아버렸지만,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은, 또한 사랑에 대해서도 순수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 비록 그곳이 다른 사람들이 꺼리는 곳이고, 또 모모가 커감에 따라 그곳은 점점 더 낡아지고 변해갔지만, 모모에게는 그 변두리 동네는 자기에게 부모대신 사랑을 준 곳이고 자신이 사랑하는 곳이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모모는 늙고 추하게 변해버린 로자 아줌마의 눈을 보고서도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하더라도 자신은 로자 아줌마의 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고 있다고 말한다.
로자 아줌마가 고통스럽게 임종을 맞이할 때까지 모모는 절대로 로자 아줌마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로자 아줌마가 원하지 않는 병원에는 절대 가지 않았다. 그녀가 죽은 후에도 모모는 그녀와 같이 죽기 위해 그녀의 비밀스런 유태인 지하실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누워있었다. 로자 아줌마에 대한 모모의 사랑은 그만큼 대단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로자 아줌마에게 모모 스스로 한 마음의 약속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어린 모모가 자살하기 이전에 발견되어 결국은 모모에게 온정을 베푼 나딘 아줌마네 부부와 같이 살게 되었지만.
이 소설의 마지막에는 모모가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사랑해야 한다"고 한 말이 나온다. 모모는 그렇다면 사랑하는 로자 아줌마가 죽었기 때문에 자신도 죽으려 했었던 건가? 어린 모모가 로자 아줌마와 같이 죽으려고 할 만큼 사랑의 책임감을 깊이 알았던 것일까? 또, 아무도 알지 못하는 마음 속 약속이라 할지라도 약속이라는 것의 중요성을 그렇게 깊이 알았던 것일까?
자기 앞의 생- 내가 살아가야 할 생의 길, 그리고 내가 만들어 나가야 할 생의 길- 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 길은 꼭 행복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모모의 삶도 관습과 사회의 기준에서 보면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니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삶, 인정해줄 업적도 없고 남겨놓을 재산이나 자손도 없는 삶을 모모는 살았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내게 생각거리를 준다. 꼭 행복하게 살아야만 좋은 것인가, 남에게 인정받는 외형적인 삶만이 가치가 있는 것인가? 물질 위주의, 눈에 보이는 외형을 추구하는 풍조가 범람하여 연일 카드 빚 얘기나 소위 명품에 중독된 사람들 얘기가 뉴스로 나오는 요즘 사람들의 삶을 떠올려보면 이 책이 내게 주는 감동은 몇 마디 말로 정리하기는 어려울지 모르겠다.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남들이 보기에 행복해 보이지 않을지라도, 유태인이건, 아랍인이건, 창녀이건, 포주이건, 그런 외형적 조건을 모두 떠나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진심으로 사랑했을 때 그 사람의 삶이 의미있고 가치있는 삶이 아닐까 하는 근본적인 생각을 해 본다. 나는 크리스찬이지만 어떤 이름으로 불리건,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이 믿건 간에 신(神)이 우리 인간에게 바라는 삶은 이런 것이 아닐까 - 성경에 나오듯이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답답함과 두려움. 그것이 아직은 내가 내 앞의 생에 대해 느끼는 것 전부이다.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해 사회적으로 부여된 보편적 확신을 가지고 달려가야만 한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서 졸업 후에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안정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확신. 뒤처지거나 방황하다보면 어느새 내 앞의 미래는 저만치 멀어져 과거의 꿈이 되어버리기에 그래서는 안된다는 주입된 사고. 자꾸만 이렇게 좁아져 있기에 답답하고 두렵기만 했던 이런 나의 삶에 있어 이 책은 진정한 삶의 모습이 무엇일까 어슴푸레 깨닫게 해주었다. 우리네 삶이 존재하는 이유는 사랑하기 위해서이다.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라도 자기 안에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사랑이 가르쳐 주는 지혜를 깨닫게 되고 그 사랑 때문에 불행하지 않다. 나 또한 사랑의 지혜를 깨달으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