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섭의 삼대 삼대

삼대
학교에서 추천한 책 가운데서 `삼대`를 골랐다. 나이 차가 꽤 나는 큰오빠 책상에 항상 꽂혀있던 다른 책보다 훨씬 두껍던 책이라는 인상에서, 그리고 큰오빠에게 묘한 동경심이 있던 나는 이번 기회에 꼭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삼대`는 할아버지 조의관을 가부장으로 모시는 조씨 일가의 삼대에 걸친 이야기다. 하지만 나는 `삼대`를 단순한 가족사 소설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삼대`는 할아버지 조의관과 아들 조상훈, 손자 조덕기 간의 세대차이, 그에 따른 갈등과 대립을 통해 일제식민지 시대의 급변하는 사회적 배경과 그 시대에 같이 살았던 가치관이 다른 세대들을 대변해 주기 때문이다.
`삼대`는 맨 처음 김병화가 조덕기를 방문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다시 조덕기가 김병화의 사건 현장을 찾아가는 것으로 끝난다. `삼대`에는 다른 인물들의 여러 가지 이야기도 많이 나와 있지만 실지로는 덕기와 병화와…(생략)

각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변화를 하되 투쟁이 아닌 타협 쪽을 주장했다. 또 급진적인 개혁이 아니라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했다. 나는 이렇게 다른 듯 하면서도 비슷한 두 사람의 대립에 흥미를 느끼며 읽었다.
다음은 덕기의 아버지인 조상훈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는 부잣집 아들로서 2년 동안 미국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이다. 하지만 그는 완고한 아버지 세대에 밀려 자신의 이상을 펴지 못한 채 좌절하고 방황하는 구세대 조의관과 신세대 조덕기의 중간세대를 잘 보여준다. 그는 소설 속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인물로 나타나지만 나는 조상훈에 대해 동정심이 갔다. 그는 결코 의지가 약하고 무지한 인물이 아니다. 하지만 조씨 가문의 세 사람 중에 가장 시대적 영향을 많이 받은 인물이다. 이런 외부 상황에 밀려 그의 열정은 식어가고, 방황하게 된 것이라고 본다.
조씨 일가의 세대간 갈등은 심각하다. 부자간의 갈등, 고부간의 갈등, 첩들간의 갈등, 이런 모든 것은 할아버지 세대가 만들어낸 일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조상훈이 아니라 조덕기이다. 그래서 조상훈에 대한 연민이 더 생긴다. 할아버지 조의관이 아들을 건너 뛰고 손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 즉 열쇠꾸러미를 넘겨주는 데서도 느꼈다.
어쨌든 이와 같이 조의관과 조상훈의 시대는 끝나고, 덕기와 병화 그 후세대들의 시작을 알리면서 소설은 막을 내린다. 나는 조상훈과 조덕기는 결과적으로 비슷하다고 느꼈다. 결과적으로 사회문제에 대해 방관하는 자세도 그렇고, 홍경애와 필순 두 여자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이 소설을 읽기 전에 사회적 배경을 잘 알아두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30년대의 현실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내용 이해가 어려웠다. 아쉽긴 하지만 이 소설에서 가부장으로 군림하기를 고집하는 할아버지, 그 봉건을 벗어나 새로운 세대를 열고자 하는 아들,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어지러운 상황을 해결해 나가야 하는 손자가 공존할 수밖에 없었던 1930년대 중산층의 집안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당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지루할 정도로 길게 쓴 이이야기를 통해 우리 시대에도 존재하는 세대차, 계층차를 더 생각해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