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고 서평하기

★ 역사란 무엇인가?
서평이라고는 하지만, 내게는 이런 책(아마도 강연집)에 대한 평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것은 책의 작가인 E. H. 카라는 사람이 역사학이라는 분야에서 자리잡고 있는 명성과 이 책이 그 분야에서 차지하고 있는 존재 가치가 너무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내 자신의 소양(교양)이 너무도 부족한 탓에 특별히 어떤 평을 내릴만한 틈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제목을 서평이라 하였지만 그 서평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와는 다소 다른 측면에서 이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에 대한 접근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역사란 무엇인가. 이 책의 저자가 1장과 2장에서 기술한 역사에 대한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역사라는 것은 `현대 사회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 역사가와 과거 사실 사이의 상호 작용, 또는 대화이다.`라는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다. 저자는 19세기의 유럽에서 유효…(생략)

수 있었다. 내 자신이 다른 대다수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역사라는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솔직하게 말해 이번 경우에서처럼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거의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기록이 역사냐 아니냐`라는 식의 문제에 관해서도 별반 생각이 없이 지내온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단순하게 연표식으로 사실을 수집해서 기록하는 일은 그것이 말 그대로 기록이라는 차원을 넘어 역사가 되지 못한다는 이 이야기는 그 동안 내가 읽어왔던 역사 관련 서적들을 보며 내가 생각했었던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 또 단순한 원료적 차원의 사건 기록도 `가치 있는 역사(화)`라고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생각하면서 활동해 왔던 컴퓨터 통신의 가상 사회 속의 삶에 있어서도 그 행동에 작은 변화를 가하게 되었다. 그 가상 사회를 구성하는 한 국가에서 역사서 편찬을 담당하는 `춘추원` 소속의 `춘추직사`라는 직책을 맡고 있으면서 기껏해야 기록 수준을 넘지 못하는 사실 수집에만 열을 올리고 있던 나를 바라보게 되었던 것이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컴퓨터 통신상의 가상 사회라는 것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부연 설명하지 않겠다.)

E. H. 카는 앞 문단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단순한 반박 불가능의 객관적 사실들을 모아놓은 자체를 역사라고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과연 많은 실제 자료들 중에서 어떤 것들이 추출되어 역사가 된다는 것일까. 저자는 역사라는 것은 `일련의 시간 흐름에 있어서 기본적인 뼈대가 되는 여러 사실` 중에 역사가들에 의해 중요하다고 판단되어 `선택되어진 사실들의 집합`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먼저 집어봐야 할 것은 기본적인 뼈대가 된다는 부분인데, 이 부분은 시간의 흐름,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사건의 생성과 진행에 대하여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사실들은 모든 역사가들에게 본격적 선택 이전 단계에서 이미 배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관문을 통과한 사료들이라 할지라도 역사가들 개개인의 선경험적 판단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선택된 이후에만 비로소 역사화 되는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역사가가 어떤 특정 사료들에 대해서 그것의 취하고 안 취하고를 결정하게 하는데 영향력을 발휘하는 요소들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역사가는 어떠한 형식으로든 역사가 자신이 속하고 있던 당시 사회와 연관을 맺고 있으며 역사서를 집필할 때에도 그 사회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운 상태일 수 없다라는 문제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본의에 의해서는 아니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 인간과 관련이 있는 수많은 개인 및 사회와 복잡하게 연관을 맺고 있다는 사실은 역사가의 존재라는 사항을 정의한 이 책의 한 부분을 읽지 않고도 능히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역사가의 입장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해 본 적이 없는 다른 학문을 배운 사람들이라도, 또는 배움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어떤 사람이 어느 지역에서 어느 시간대에 태어났는지에 따라, 또 어떤 가족 환경에서 자라라 어떤 교육을 받고 자랐으며, 어떤 사람들과 친분을 맺고 있는지에 따라, 그리고 그 개인의 취미나 취향이 무엇이었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관심 영역이 적절하게 발견되고 또 개발되었는지에 따라서 가지게 되는 가치관과 현실에 대한 인식, 세계관, 사상, 계급 인식 등이 모두 다를 것이 분명하며, 이러한 제반 영향에 있어서는 역사가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형성된 독특한 의식은 역사가들로 하여금 어떤 시대의 역사를 취급하려 할 때 특정 사건의 중요도를 결정하는 판단에 있어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역사가가 역사 집필 당시에 처한 개인적인 여건과 당대의 시대적 상황(요구)도 이러한 중요도의 결정시에 상당한 변수로 작용하게 됨은 물론이다. 설령 이러한 모든 것들을 감안하고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는 역사가들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영향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와 연관된 사례는 우리 주위에서도 얼마든지 쉽게 발견할 수가 있다. 예를 들면, 한국전쟁의 발발 원인 한가지를 두고도 전쟁 직후와 60, 70년대, 그리고 80, 90년대의 접근법과 결론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대에 따라 동일 사항에 대해 해석이 달라지는 이유는 역사가들 각자의 가치관과 이념, 당시 정권의 분위기와 개인의 처지(외국 거주자, 외국 학자, 전쟁으로 인한 피해 정도) 등과 인용 가능한 사료의 (제한된) 양이 달랐던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 명칭에 있어서도 반공을 최우선으로 삼던 시대에는 적대감을 높이기 위해 `6?25동란` 등으로 불러오다가 `동란`이라는 단어가 민족에 대한 감정을 격양시켜 통일에 장애가 된다는 일종의 공감대(필요성)가 형성되고 국제화/세계화의 시대에 발맞춰 대외적으로 `Korean War`라고 불리고 있는 상황 등을 감안해서 `한국전쟁`으로 바꿔 부르기 시작한 것에서도 이러한 현실의 영향력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역사학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와 가까운 시간대의 역사를 집필할수록 보다 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어떤 사건에 대한 증언자와 관련자가 상당수 살아 있고, 그 사건과 관련된 1,2차 사료들이 아직도 계속 생산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역사가 자신이 그렇지 않았을 때에 비해서 당대의 시대적 상황이나 그 상황의 요구에 대해 심각하게 영향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비단 오늘날에 와서 중요하기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이 글에서 예로 들고자 하는 `실록 편찬`과 `삼국지`, `사기` 등이 동양사에 국한된 것이기는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부분이 이 분야라서 어쩔 수 없다.)

조선시대에 실록을 편찬할 때에는 왕이 붕어(崩御)한 다음에 집필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으며, 실록이 편찬된 이후에도 그 실록의 내용을 왕이 보는 것을 삼가게 했던 것이 우선 들 수 있는 예이다. 이 것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역사 기술에 있어서 당대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마련된 것이었다. 실록 자체를 훌륭한 역사서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나중에 실록을 기반으로 해석되고 편찬될 여러 사건들에 대한 결과물(역사서)들을 감안해서, 주어진 여건하에서 이미 사관들에 의해 최대한 주관이 배제되어 양산된 수많은 사초들을 다시 정리해서 월일과 연차순으로 최대한 정확하게 배열한 것이 바로 실록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태종8년(1408) 5월에 상왕으로 있던 태조가 붕어하자 태종이 이듬해 8월에 태조실록을 편찬할 것을 어명으로 하달하자, 신하들이 태종에게 당대의 사람들이 모두 살아있을 때에는 바른 역사를 편찬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3대가 지난 이후에나 사서와 실록의 편찬이 이루어졌다는 전례를 태종에게 어명을 거둘 것을 주장한 것이었다. 결국 태종의 강한 의지로 태종10년 정월부터 3년여 간의 실록 편찬 작업이 진행되었지만, 이러한 신하들의 행동과 다음 대에서의 전대 실록 편찬 작업은 조선왕조 전반을 통해서 지속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역사가들이 당대의 상황을 배제하려고 노력하고 주의를 기울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정도의 차이를 약화시킬 수 있었을 뿐이지 결코 모든 상황으로부터 완벽하게 해방된 역사가의 위치를 보장해 주지는 못하였다. 실록에 있어서도 수 차례 개수가 가해졌으며 수정실록이라는 것도 다수 편찬된 바가 있다는 사실이 그것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객관적으로 역사를 편찬할 수 없었던 대표적인 역사가로는 다음에 인용하고자 하는 삼국지(흔히 말하는 소설인 삼국지연의가 아닌 正史 삼국지)의 저자 진수(陳壽)를 들 수 있다. 사기(史記)의 편찬자인 사마천(司馬遷)이 자신의 열전에서 `나는 이른바 고사를 적어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것을 정리하여 보려는 것이지, 소위 창작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한 것에서부터 옛 사가들이 그러하였듯이 진수도 (객관적) 역사 편찬자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래서 삼국지의 역사 기술 방식도 다른 방식에 비해 책 전체를 주의깊게 읽어야지만 그 책에 담긴 진실된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는 기전체(紀傳體)의 방식으로 전대의 역사를 쓰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을 차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수 역시 당시의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일단 진수가 위(魏)나라의 뒤를 이은 진(晉)나라의 관리였다는 사실 자체가 삼국지에 존재하는 3개의 국가 가운데 위나라를 정통으로 보게 되는데 주요한 요소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E. H. 카가 `역사가는 모든 영향에 대해 경계하며 자신을 연마해야 한다`고 말한 것만을 염두에 둔 나머지 진수 자신이 진나라의 관리였기 때문에 위나라를 정통으로 보는 것이 먼 훗날 비판의 꺼리가 될 것을 염려하여 유비의 촉나라를 정통으로 삼았어야 했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말이다. 또 이러한 정통성 문제가 아니더라도 진수는 삼국지를 집필하면서 아직도 살아있던 `자신이 편찬하고자 하는 역사서의 시간대`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그 후손들의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날 수는 없었다. 당시 진나라의 황제였던 무제(武帝:사마염)부터가 위나라 때에 활동하던 사람이었으며, 진나라의 관리 대부분이 과거 삼국 중에 하나였던 위나라의 관리들이었기 때문이다. 진수가 촉나라와 오나라를 별도의 장으로 구분하고 촉나라의 제갈량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 대해 이유없는 폄하(貶下)를 하지 않은 것 등을 보면 사건과 인물을 공정하게 기술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진수 사후에 쓰여진 하나의 기록에 `진수는 일찍이 제갈첨(촉나라 제갈량의 아들) 수하의 관리였을 때, 제갈첨에게 치욕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일을 근거로 하여 죄악의 원인을 황호(당시 촉나라 환관)에게 돌아가게 하고, 제갈첨은 정치의 혼란을 바로잡을 수 없었다고 적었습니다.`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면 진수가 일차적으로 자신 스스로의 기억(촉나라와 위나라의 관리였던 과거)으로부터도 100% 자유롭지 못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진수는 삼국지 전반(특히 열전에서)에서 다양한 등장 인물과 사건 개별에 대해서 나름대로의 입장과 견해를 기술하고 있다. 이는 사마천의 사기에서도 나타나는 것으로 일종의 `이야기로서의 역사`라는 중국의 역사 편찬 관행이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진수 이전의 사마천도 사기를 집필하면서 자신을 객관적인 기록자로 남기고자 했으나 그것을 끝내 이룰 수는 없었다. 자신의 선택에 의해 항우(項羽)를 본기(本紀)에 넣기도 하고 백이(百二)와 숙제(叔齊)를 열전의 제일 앞부분에 위치시키는 등의 역사를 쓴 것이었다. 즉, 사기를 구성하는 본기와 세가, 열전이라는 것 자체가 사마천에게 중요하다고 여겨져 선택된 것들만 수록된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각 편마다 마지막 부분에 `태사공은 평한다.(太史公曰)`라고 하여 자신의 주관적인 견해와 비판을 수록한 점 등이 그것이다. (이는 진수도 마찬가지로(評曰) 앞서 말한 `이야기로서의 역사`라는 견해와 일치되는 일종의 관행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평이 없다고 하더라도 위에서 제시한 것들을 살펴보면 그 역사서의 내용 자체가 `역사가의 역사인식`을 투영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러한 예들을 살펴보건대, 역사가가 당대의 현실과 자신의 가치관 등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으므로 역사는 `현대 사회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 역사가와 과거 사실 사이의 상호 작용, 또는 대화`라는 E. H. 카의 이야기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핵심을 정확하기 포착하여 표현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 우리 나라의 근/현대사에 있어서 그 역사서가 너무나도 빈약하다는 사실이 이런 문제를 너무 심각하게 고려했기 때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 우리 나라에서도 최근에 30-40대의 새로운 중(장)년층(세칭 386세대) 지식인들과 역사가들에 의해 그 세대가 경험해 왔던 `노동해방`, `민주화운동`, `반독재투쟁`, `민족통일` 등의 이야기가 그 이전의 시간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가치 있게 자리매김되어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새로운 세대들이 사회 활동의 중심 연령층으로 등장하면서 자신들이 살어오면서 체험하고 느껴왔던 것들을 대학 강단이나 역사책 등을 통해 다음 세대들에게 교육시키고 이전의 역사관으로부터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학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보지 않더라도 자기의 경험을 가치있는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심리적인 측면을 감안한다면 어느 정도는 예상할 수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단, 그것이 `조조`를 높이기 위해 `유비`를, `원균`을 높이기 위해 `이순신`을 필요 이상으로 깎아 내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근본적인 문제에는 충분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즉, 자기 합리화나 자기 경험의 가치화를 위해, 또 진실을 밝힌다는 명분으로 실제 역사를 지나치게 깎아 내리거나 크게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의 상황이 이 정도를 걱정할 수준은 아닌 것 같지만 말이다.

앞 문단에서 예로 들었던 `사기`나 `삼국지`를 보다 실제감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여럿 있다고 E. H. 카는 말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역사서를 저술한 역사가에 대한 이해를 선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마천이나 진수의 삶이 어떠했고 어떠한 사상을 가진 사람이었는지를 판단한다면 보다 역사적 사실에 근접할 수 있음은 자명하다. 사마천이 궁형(宮刑)을 받았던 일이나 진수가 촉나라에서 진나라로 옮겨 다녀야 했던 생활을 따라가면서 그들의 삶의 행적을 집어보는 것은 곧 그 사람에게 어떤 가치관이 형성되었구나 하는 것을 가늠할 수 있는 방향을 잡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에서 하나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근세의 일이 아닌 다음에야 멀리 고고학적으로 몇 만년이나 몇 천년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특히, 우리나라의 고조선, 삼국, 심지어는 고려시대까지) 기원을 전후로 한 시대를 살펴보면 우리에게 가용한 사료나 역사서가 매우 적은 경우를 관찰할 수 있으며, 그 사료나 역사서를 만들어낸 사람 자체에 대한 어떤 정보도 구할 수 없는 경우를 접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 때에는 과연 그 무엇으로 해석의 기준을 삼아야 할까 하는 점이다. 최근의 역사를 제외하고는 그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있기 마련이며, 이 상황들은 갑자기 어떤 특별한 자료가 발견되었다고 해서 그 위치가 쉽게 변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런 경우는 어떤 다른 관점에서 집필된 사료가 발견되거나 하면 그 역사의 틀 자체가 움직이기 사태로까지 파급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런 경우가 많다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매우 희귀한 경우에 한하는 것일 뿐이다.) 과거의 기록은 주로 그 당시 지배층, 즉 문자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던 소수의 계층에 의해 어떤 특별한 관점과 목적에 의해 기술된 것이 대부분으로 어떤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인지도 확신할 수 없는 각종 설화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배층이 아닌 하류층(민중)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봐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논외로 하고...) 역사가들에 의해 선택되어질 수 있는 여지도 그만큼 크다는 사실이 과연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과거의 모습이 진짜의 모습과 얼마나 비슷한가 하는 점을 의심하게 한다는 것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창작해서 넣은 설화나 낙서 등이 있을 수 있고, 또 거의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훗날에 이러한 일을 예상하고 고의로 일종의 창작이나 장난을 친 경우까지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과연 역사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일본서기`나 `삼국지`의 `위지동의전`같은 경우를 살펴보면 너무나도 (읽어버린 고리들이 많은) 빈약한 우리의 고대사에 관해 그 것들이 얼마나 실제의 사실을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국가간이나 민족간의 중복된 기록에 대하여 각국 역사학자들의 이해 대립으로 인해 벌어지는 치열한 논쟁에 있어서는, 그 누가 어떤 해석(역사)이 더 타당하고 객관적(사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없는 지경에 달하는 경우까지 있기도 하니 말이다. 이런 문제는 역사학자들의 양심에만 맡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고 해당 국가의 국력과 활발한 외교적 노력에 의해서만이...

각설하고 마지막으로 넘어가서, E. H. 카가 말한 `역사에 있어서의 결정론`과 `역사에 있어서의 우연`이라는 문제에 관해서 간략하게 써 보기로 하겠다. 자자는 여러 장에 걸쳐서 역사란 결정론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보았다. 즉, 우연의 중요성과 상쇄성 등에 대해 반례를 제시하면서 어떤 사건이 일어난 데에는 그러한 사건이 일어나게끔 만든 원인이 존재하며,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인간의 이성이며, 그러한 이성을 기반으로 한 합리적인 판단은 역사가의 태도로서도 합당하고 지향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우연의 발생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당연하지만) 나도 저자와 마찬가지로 역사가 결정론적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이견이 없다. 즉, 저자가 말한 바와 같이 어떤 복잡한 원인들의 상호 작용에 의해 종국에는 어떤 사건이 발생한다는 의견에 동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간과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 있다. 바로 필연성과 개연성에 관한 것으로 역사는 어떤 원인들이 갖추어졌다고 해서 반드시 다음 결과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말은 `필승을 기약할 수는 없으나 승리를 예견할 수는 있다.`라는 문장과 같이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개연성은 있으되, 필연성은 없다`라는 말이다. 사기 권70의 `태사공자서`에서 사마천이 `1호 1리의 하찮은 작은 잘못이라도 그 결과는 천 리의 차를 낳는다`라고 한 것과 `신하가 임금을 시살하고, 자식이 아버지를 시살하는 것은 일조일석의 이유에서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오랫동안에 걸쳐 쌓이고 쌓인 잘못이 그런 결과를 가져온다.`라고 인용(易經)한 것은 역사가 필연적인 것이냐 우연적인 것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도 적절한 인용구가 아닐까 한다.

나는 이 책을 세 번 읽었지만 전부를 다 이해할 수는 없었다. 또한 본 서평에서도 E. H. 카가 말했던 모든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없었고 아주 적은 부분에 한해서만 언급할 수 있었다. 능력과 시간적인 이유로... 그러나 이 책을 읽음으로 인해서 내가 얻게 된 것들은 적지 않다고 생각된다. 이 책을 읽음으로 인해서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었고, 앞으로 역사서를 읽을 때에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며, 더 나아가서는 인간의 삶 자체도 이렇게 현실과 떨어져서는 생각할 수 없다는, 인간 사이의 관계도 지피지기와 인지상정, 필연과 개연, 역지사지와 상대성 등이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는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고 돌아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