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을 읽고

설국을 읽고
요사이 주변에서 흔히 사용하고 듣게 되는 단어 중에 `명품`이라는 것이 있다. 매우 아름답고 세련되었으며 그것이 지닌 희소 가치로 인해 누구나 몇 개쯤은 소유해 보고 싶다는 욕망과 더불어 은근한 환상을 불러 일으키는 제품이 바로 명품이다. 쉽지 않은 접근 가능성 때문에 우리는 그것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욕구를 상상이라는 가상 세계로 대체해 부풀림으로써 아련한 신비와 낭만에 빠져들고, 환상에서 깨어나 마지 못해 현실로 되돌아와야 하는 순간에는 여전한 거리감에 묘한 허무마저 느끼게 된다.
명품이라는 호칭을 붙여도 좋을 만한 책은 없을까? 여기 좀체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운 문체 하나만으로 명품의 이름에 걸맞는 책 한 권이 있다. 일본의 최초의 노벨상 수상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 그것이다.
설국은 때 아닌 무더위로 짜증스런 요즘, 눈과 얼음에 대한 향수로 목마른 우리들을 눈이 많이…(생략)

람에게 일어나는 일이라곤 시마무라와 게이샤 고마코의 몇 번의 만남과 헤어짐 속에 피어나는 애틋한 사랑과 요오코의 유키오에 대한 헌신적 병간호와 유키오의 죽음, 고마코와 요오코와 유키오의 어정쩡한 관계, 시마무라와 고마코와 요오코 사이에 흐르는 삼각 관계 비슷한 것, 그리고 화재로 인한 요오코의 죽음의 암시가 전부다.
세차게 타오르는 불길과 은하수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의 대비 속에서 요오코가 죽는 듯한 암시를 내보이며 끝이 나는 설국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면 우리는 비로소 환상과 신비의 몽환적 분위기에서 깨어나 가슴 속에 이름 모를 허무 하나씩을 매달고 무더위 속에 발을 디디게 된다.
작가는 과연 무엇을 말하려고 했던 것일까? 이 마지막 페이지로 설국이 정말 끝난 걸까? 이런 저런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점점 더 깊은 미궁 속에 빠져 드는 느낌만 받게 된다. 안개 낀 듯 몽롱한 미로 속을 헤매다 도저히 해답을 얻을 길 없어 자포자기적인 심정이 되었을 때, 다시 한 번 부딪혀 오는 진한 허탈감.
야스나리는 신기루처럼 아름다운 눈의 세계 속 어딘가에 얼음처럼 투명한 허무 하나를 숨겨 두고 설국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이의 가슴속 깊은 곳에 새겨두려던 것이 아니었을까?
숨막힐 정도로 매혹적인, 서정미의 극치를 이루어 낸 문체가 그려내는 설국의 신비한 가상 세계는 아름다움과 환상과 허무의 향기를 머금고 영원한 명품으로 우리 곁에 머물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