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을 읽고 사람의 아들을 읽고…

사람의 아들을 읽고…
저자 : 이문열
출판사 : 민음사
내가 `사람의 아들`이란 책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꽤나 멋대가리 없는 표지의 이 책은 중 1때부터 끊임없이 나의 눈길을 끌곤 했지만 난 이 책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왠지 제목이 주는 느낌으로 볼 때 현대일상사를 그린 이야기 같았으며 나는 그런 류의 책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얼마전에 나는 다른 책의 비평을 읽다가 `사람의 아들`을 언급한 대목을 보게 되었다. 그로 인해 나는 `사람의 아들`이 내가 생각하던 그런 책이 아닌, 상당히 나의 흥미를 끄는 내용이란 걸 알 수 있었고, 그래서 나는 주저없이 이 책을 읽게 된 것이다.
1970년대, 삶에 찌들려 초라하게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 중 하나인 남경호 경사는 경찰서 부근 산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수사를 맡게된다.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민요섭`이라 밝혀진 피살자…(생략)

기 힘든 이야기였으나, 그는 처음에 지방에서 수사를 하고 귀서하는 기차 속에서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읽게 된 것을 계기로 그 노트 속에 빠져들게 된다. 그러나 수사엔 좀처럼 진척이 없었다. 유일한 혐의자 조동팔은 행방불명된 지 오래였던 것이다. 그러나 창녀촌을 조사하다 그의 행적을 잡아낸 남경사는 그의 아내를 찾아내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녀 역시 조동팔이 간 곳을 알지 못했다. 심지어 그녀는 자기 남편의 이름조차 그가 자신을 숨기기 위해 사용하는 이름인 `김동욱`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헛걸음은 아니었다. 새로이 만들어낸 성경같은것이 기록된 또 하나의 노트를 발견한 것과, 조동팔이 사라지기 전날, 그와 민요섭이 다툰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소득을 올린것이다. 그러나 결국 조동팔의 행방을 모른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었기 때문에 투덜거리던 그는 동료 형사의 도움으로 `김동욱`의 행적을 찾아내는데 성공한다. 조동팔은 김동욱의 주민등록증을 쓰면서 전과를 기록했으며, 이번에도 폭행으로 복역하다 바로 그날 출소한 것이었다. 드디어 찾아냈다는 흥분에 남경사는 조동팔의 집으로 달려가지만 조동팔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그를 맞는다. 그리고 깡소주를 퍼마시면서도 침착한 태도로 이야기한다. 자신은 민요섭의 사상에 감동받아 부모가 부정하게 모은 재산을 강도질해가면서까지 그를 따랐고, 그들의 신을 만들어내기까지 했다고. 그러나 언제나 심약했던 그가 그들의 신에 지쳤다며 십자가 앞으로 굴욕적인 회귀를 하는 배신을 했고, 자신은 정신적 지주를 잃은 충격을 이길 수 없어 그에게 애원하다 결국은 민요섭을 죽였다고 말이다. 그리고 얘기를 마친 조동팔은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진다. 음독 자살이었던 것이다.
별로 복잡할 것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야기는 하나 더 있다. 이 책은 액자소설이고, 아직 액자틀 속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바로 민요섭의 노트속 내용이다. 하나가 아니라 둘인 창조주, 그리고 그들이 각각 내려보낸 `사람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아하스 페르츠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예수야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아하스 페르츠란 이름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아마 작가가 창조해낸 인물이겠지-라고 말이다. 그러나 난 사실 아하스 페르츠의 이름을 보는 순간 무척 반가웠다. 예수가 십자가를 매고 가다 그의 집 문 앞에 쓰러졌을 때 예수를 조롱한 벌로 재림의 날까지 늙지도 죽지도 못한 채 예수를 기다려야 하는 형벌을 받았다는 이른바 `방황하는 유대인` 아하스 페르츠. 작가 이우혁은 퇴마록 말세편에 그를 끌여 들였고, 나는 그래서 이미 그를 만난바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엔 아하스 페르츠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무척이나 궁금했던 것이다.
예수를 경배하고 돌아가던 동방박사들은 크고 불길한―어디까지나 그들 주관에서―별을 보게 된다. 사악한―이것도 어디까지나 그들 주관―지혜의 빛을 뿌리는 그 별이 비추는 곳에는 진정한 `사람의 아들` 아하스 페르츠가 태어나고 있었다.
아하스 페르츠는 어릴 때부터 남달리 총명했다. 그래서 그의 양친은 그를 랍비로 키우기로 결심하고 아들을 가르치는 데 온갖 정성을 들인다. 그러나 그가 12살 때 만난 가짜 메시아 테도스는 그에게 `진짜 메시아는 우리의 배고픔을 달래줄 빵과, 위대한 기적과, 지상에 유대의 왕국을 건설할 권세를 가져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이후 아하스 페르츠가 청년으로 성장했을 때 그의 행동에 큰 영향을 끼치는 말이 된다.
아무튼 젊은 아하스 페르츠는 처음에는 별 걱정없이 학식이나 쌓으며 랍비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와 한때 불륜의 관계였던 유부녀 사라의 죽음과 세상의 많은 비참함들은 그를 고민하게 했다. `우리의 신께서는 왜 우리에게 고통을 주시는가?` 마침내 그는 새로운 신을 찾아 나선다. 그의 방황이 시작된 것이다. 10년에 걸친 길고 긴 방황이.
그는 이집트로 시작한 여행이 로마를 마지막으로 끝날 때까지 수많은 신과 그들의 교리를 접하면서 진리를 찾으려고 애썼다. 그 과정에서 그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모세가 실은 아톤 신을 부활시키고자 했던 이집트의 신관이었다는 것, 성경속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바빌론의 신화 `에누마 엘리시`를 훔쳐 꾸민 것이라는 것, 사탄과 종말의 계시 또한 페르샤의 신화에서 따왔다는 것, 결국은 유일신 야훼의 신성조차도 `엘 사타이의 목양신이 호렙산의 영과 만나 군신의 힘을 더하고 판관들에 의해 농경신의 권능을 더했으며 유일자로 확대된`, 즉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 등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야훼의 부정까지는 가능했으나 새로운 신을 찾을 수 없었고, 그 최종목표를 이루기 위해 귀향한지 얼마 안 되어 또다시 광야로 떠나게 된다. 그리고 40일간의 묵상 끝에 그는 마침내 신을 만난다. 신은 자신이 `야훼이며 야훼가 아닌` 그의 반쪽이라고 말했다. 야훼가 선이면 자신은 지혜로써 함께 천지를 창조했으나 야훼의 독선(獨善)으로 인간은 점점 고통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그에게 인간 구원에 대한 제안을 내놓았을 때 그는 자신이 보낼 `사람의 아들`로 그 답을 하겠다고 했으며, 그에 따라 자신이 선택한 `사람의 아들`이 바로 아하스 페르츠라는 것이 그 신의 말이었다. 그리고 신은 `모든 것이 너희(인간)에게서 일어나고 너희에게서 끝나리라.`는 말로 말씀을 끝낸다. (신이 이야기한 내용은 후에 발견하는 노트에 적힌 새로운 성경 `쿠아란타리아 서(書)`에서 나오게 된다.)
마침내 신을 찾은 아하스 페르츠는 집으로 돌아가던 중 광야에서 고행중인 예수를 만난다. 그는 한눈에 그가 `사람의 아들`이며 예정된 메시아인 것을 알아보고 그에게 `배고픔을 달래줄 빵과, 위대한 기적과, 지상에 유대의 왕국을 건설할 권세`에 대해 질문한다. 그러나 대답은 우리 모두가 아는바와 같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 네 아버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마라. 사탄이여 물러가라.` 아하스 페르츠는 지금 유대가 갈망하는 것이 바로 그것임을 말하고, 함께 유대를 해방시키고 그가 왕으로 군림하라고 권하지만 예수의 대답은 한결같다. `사탄이여 물러가라.` 후에 이 만남은 여러 복음 속에 `사탄으로 인해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심`으로 기록되게 된다.
예수에게 실망한 아하스 페르츠는 그 후 네 번 더 예수를 만나게 된다. 그는 항상 예수에게 말한다. 그대여, 우리가 원하는 것은 주지 않은 채 구원과 용서를 외치지 마시오. 당신이 주장하는 용서는 당신만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이고, 그대의 말은 한 명의 의인을 위해 구백아흔아홉 명의 사람들을 지옥으로 몰아넣는 것이오. 하늘의 영광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며 고통을 참으라 하지 마시오. 감당할 수 없는 구원을 약속하지 마시오. 우리를 그대로 두시오. 부디 간섭하지 마시오. 당신은 당신이 죽임당하게 당신을 내버려두어 우리에게 더욱더 강한 죄의 굴레를 씌우려 하는구료. 지상의 일은 지상 사람들의 손에 맡기시오. 그러나 예수의 대답은 항상 다를바 없다. `그것이 내 아버지의 뜻이오.`
예수와 아하스 페르츠의 논쟁을 듣고 이미 오래전부터 그의 사람이 된 유다는 예수를 팔게 되고, 밤사이 내려진 판결에 따라 예수는 십자가를 진채 골고다로 향한다. 그리고 마침내 다섯번째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아하스 페르츠의 집 앞을 지나가던 예수는 물 한잔을 부탁하지만 아하스 페르츠는 거부한다. `하늘에 있는 영광의 당신 나라로 가시오. 거기서 구하시오.` 분노한 예수는 재림을 선언하고 다시 골고다로의 걸음을 옮긴다. 한편 예수의 부활선언에 충격을 받은 아하스 페르츠는 곰곰히 생각한다. 그리고 마침내 시공의 속박을 초월한 그는 예수의 죽음을 지키려 간다. `나는 당신이 올때까지 기다리겠소!` 예수는 처연하게 하늘을 보며 `이 잔을 거두어달라.`라고 원하지만 침묵뿐. 결국 예수는 숨을 거둔다.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유일하게 인간다웠던 한마디와 함께.
그리고 그후 세상을 지배해나가게 된 기독교는 악의에 가득 차서 아하스 페르츠를 사탄의 자식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쉽게 다루기 힘든 주제를 가지고 작가가 말하려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려 열 장에 달하는 평론가의 해설을 나는 여러번 읽어보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건 해설이라기 보다는 머리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는 듯 했다. 평론가가 말하는 `사람의 아들`의 거창하기 그지없는 문제의식에 관해서라면, 나는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 된다. 뭐, 상관없다. 난 내가 느낀 대로 말하고 싶다.
한때는 나도 교회를 다녔었고, 열심히 기도하기도 했었다. 주로 꼬마 때였지만. 하지만 지금의 나는 기독교에 대한 비판의식을 많이 가지고 있다. 특히 난 기독교의 그 배타성이 싫었다. 하나님만이 유일신이며 다른 종교의 신은 모두 우상이고 잡귀에 지나지 않는다는, 그래서 문화재든 뭐든 무시하고 공공연히 타 종교의 상징물을 훼손하는 기독교의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다. 게다가 여자를 무시하는 성경의 내용도 참 맘에 들지 않았고. 그래서 여러 가지 사정이 겹친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내가 기독교인들이라면 편견을 갖고, 어디 가서 기독교를 욕하고 그런 적은 없고 그냥 내가 싫은 거였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다룬 기독교의 문제점과 모순은 내가 이때까지 깊이 생각하지 않은 또 다른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기독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신`이란 말이 있는 모든 곳에 해당되는 문제다. 신이 있다면, 그는 왜 자신의 피조물인 우리를 이런 고통과 불행 속에 버려두고 있는가-라는 의문.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다가 무신론으로 흐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민요섭이나 아하스 페르츠 역시 그러한 의문을 가지면서 방황을 하게 된다. 그래서 민요섭은 노트를 쓰고, 세상의 감당할 수 없는 불행들을 아주 미미하게나마 없애려 하고, 그의 신을 만든다. 그래서 아하스 페르츠는 10년을 떠돌아다니고, 그가 찾던 신을 만난다. 그러나 민요섭은 그의 신에 지쳐 기독교로 돌아가고, 살해당한다. 그러나 아하스 페르츠는 결국은 민요섭의 노트 속에서 살이 붙여진 인물에 불과하다.
액자속 이야기에서 아하스 페르츠와 예수는 땅위의 구원과 하늘의 왕국을 놓고 논쟁을 벌인다. 일단 신이 있다고 가정할 때 또다시 갈등하게 되는 의문. 우리가 원해야 하는 것은 이땅의 구원인가, 하늘의 영광인가? 우리는 이 현재를 즐겁게,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하지만 많은 종교의 교리는 내세를 바라보라고 가르친다. 내세를 위해 선행(물론 선행은 좋은 것이지만.)하고, 내세를 위해 고통을 참고, 먼 구원을 위해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하고. 우리가 당장 살아가야 하는 것은 현재가 아닌가? 왜 확실치도 않은 구원이란 말만으로 세상의 모든 고통이 당연한 것이 되어야 하는가?
이런 의문에 결론은 없다. 당연히 정답도 없다. 사실 중요한 것은 신이 있는지 없는지, 우리가 현세와 내세의 구원 중 어느 것을 바라야 하는지, 그것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결국에는 혼자다. 가장 힘들고 가장 어려운 자신만의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결국 각자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 그러기에 인간은 외롭고 힘들다. 그래서 인간은 신을 믿기 시작했다. 실재로 신이 존재하든 않든 간에 인간은 외로운 자신이 정신적으로 기댈 `어떤 것`이 필요했다. 그것이 신이다. 종교는 그 형식이고 의식일 뿐 신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신을 향한 기도 역시, 거기에 담긴 자신의 간절한 소망과 염원이 일종의 형상화가 되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신은 믿는 사람들이 기대고 기도하는 대상이며 고로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이 신의 지배를 받으며 신을 위해서 죽고 살고 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그렇게까지 어리석지만은 않다. 모든 선과 악은 구원과 징벌이란 신의 판단에 맡겨진 것이 아니며, 결국은 인간들 스스로 판단하여 고쳐 나가고, 인간들 스스로 서로를 용서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의 일은 인간이 처리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신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땅위에 너희를 세웠으니 구원도 용서도 땅위에서 구하라. 진실로 이르노니, 너희를 억압하고 우리의 거룩함을 보탤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너희를 낮추고서 우리를 높일 것 또한 아무 것도 없다. 너희 고통 위에 우리 즐거움이 있을 리 없고, 너희 슬픔이 우리 기쁨이 될 리 없다. 너희를 가장 잘 섬긴 자가 곧 우리를 가장 잘 섬긴 자이며, 모든 것은 너희에게서 일어나고 너희에게서 끝나리라."
쿠아란타리아서에 기록된 아하스 페르츠의 신의 말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작가의 의도가 어떻든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것들은 그러하며, 아하스 페르츠가 `진정한 사람의 아들`인 이유도 이 마지막 말 속에 모두 있으리라 생각된다.
모든 것은 우리에게서 일어나고 우리에게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