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

신은 어디에 있는가? -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읽고
과연, 신은 “지금” 존재하고 있을까? 한쪽에서는 부와 풍요의 낙원에서 그들만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절망과 체념으로 의미 없는 하루의 삶을 이어가는 지금.
더 이상 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분명 “돈”이라는 왕이 이 나라, 아니 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지금. 이제는 그 “돈”의 왕권이 신의 자리마저 넘보는 지금.
전에는 물론 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간이 신 아닌 돈 앞에 무릎꿇은 지금, 신이 설 자리가 있을까?
이렇게 신이 의심스러워졌을 때, 나는 책꽂이에서 낡은 책을 발견하게 되었고, 거기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 책의 이름은 “사람의 아들”.
D시 경찰서에 근무하는 남경사는 한 기도원 근처에서 저질러진 민요섭이라는 사람의 피살 사건을 수사하게 된다. 그를 조사하던 중, 남경사는 그가 뛰어난 신학생…(생략)

된다. 아하스 페르츠는 땅 위에서의 구원을 위한 “빵과 기적과 지상의 권세”를 구세주 예수에게 원했지만 “구세주” 예수는 하늘에서의 구원을 위한 가르침을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끝내, 아하스 페르츠는 유다로 하여금 예수를 고발하여 십자가에 못박히도록 하며, 그도 시공을 초월하여 예수의 최후를 지키다가 방랑의 길을 떠나게 된다.
민요섭은 이렇게 자신의 신을 찾았다. 그의 신은 인간의 이성과 지혜를 신뢰하는 신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천상에서 내리지 않고, 신뢰하는 인간으로 하여금 스스로 땅 위에서 구원을 찾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민요섭은 곧 갈등하게 된다. 징벌없는 악과 보상없는 선도 결국 공허함을. 그리고 그것이 바로 자신의, 아니 자신이 만들어 낸 신이었음을.
결국 그는 “우리는 신 안에 남아 있었어야 한다”며 야훼에게 돌아갔고, 조동팔은 결국 “허물어진 자신의 신념”이었던 민요섭을 죽이게 된다. 그리고는 결국 자신도 남경사에게 자신의 살인 경위를 밝히고는 음독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끝까지 자신의 신에 의지한 채.
민요섭의, 아하스 페르츠의 그 의문은 바로 나의 의문이었다. 왜 신은 이렇게 불합리한 것인지. 어째서 구원을 현재의 지상이 아닌 훗날의 천상에 마련해 놓았는지.
어째서 인간에게 욕구를 주고도 율법으로 강제하는지. 어째서 타락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도 우리는 그 책임을 져야만 하는지.
그의 의문에 나는 지극히 동감하였다. 지금도 어느 거리, 어느 역에서는 추위와 주림과 멸시의 칼날 아래 쓰러져 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왜 이들을 버려둔 채 신은 천상의 구원만을 강요하는가?
그래서 나는 민요섭과 아하스 페르츠의 사상에 지극히 공감을 표했고, 그의 논리를 쫓기에 바쁠 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찾아낸 “위대한 지혜”는 나의 기대에 실망으로 답할 뿐이었다.
인간에게 전혀 관여하지 않는 신이라면, 인간이 지상에서 구원을 얻든 멸망을 얻든, 지상에서 선을 행하든 악을 행하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 신, 그것은 이미 신이 아니었다.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 단지 방관자일 뿐.
물론 인간 스스로의 구원, 그것은 참으로 좋은 말이다. 그러나, 처음 말했던 것처럼 사회는 사람의 세상이 아닌 돈의 세상이 되어 있다. 인간 스스로의 선을 믿기에는 인간의 탐욕이 너무나 크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세상이 지탱되고 있는 것은 아직 사회에 한 가닥 사랑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머나먼 아프리카에서 히포크라테스의 뒤를 이어 의료 봉사를 펼치는 어느 의사에서부터 추운 겨울밤 한 구세군 냄비 속에 들어 있는 어느 아이의 때묻은 천원짜리 지폐 하나까지.
인간의 탐욕이 본래의 선을 누를 만큼 찌들고 오염된 이 사회에서, 아직 사랑이 남아 있다는 것은, 바로 신의 자비였다. 그저 방관하는 그 신이 아닌, 인간에게 율법을 내리고 사랑을 베풀라 하는 신의 자비였던 것이다.
세상은 아직도 돈과 권력의 시녀가 되어 있지만, 아직 한 가닥의 사랑이 남아 있기에, 아직도 서로 따뜻하게 웃으며 살아가는 그 한 가닥의 사랑이 남아 있기에, 나는 이제 그만 이 책을 덮는다.
그리고, 그 한 가닥 사랑에 나도 함께 할 것이다. 작지만 내 땀으로 돈과 권력에 잊혀진 신의 향기를 다시 풍기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 은은한 향기가 마침내 이 땅의 모든 이에게 미치는 날, 그의 구원은 이루어질 것임을 믿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