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야미친다를 읽고나서 미쳐야미친다2

미쳐야미친다를 읽고나서..
요즘 읽을만한 책, 어떤 게 있을까? 막상 떠오르지 않는 책과 씨름을 하다보면 그새 읽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는 걸 경험한 적, 아마 한두 번쯤 있을 게다. 어떻게 보면 `사는 일` 만큼 그렇게 절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책이란 때로 골치 아픈 놈의 범주에 들기 쉬운지라 굳이 읽지 않아도 사는 데 불편이 없다는 일반의 항변도 고려함직하다.
사실 그런 말을 종종 듣곤 한다. 내가 생각해도 읽는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실생활에 도움이 되느냐 하면 사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읽는 책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겠다. 예를 들어 주식투자와 관련한 책을 읽고나서 때 아닌 대박을 맞았다든지, 요즘 크게 각광받고 있는 웰빙 관련 서적을 읽고 식생활이 크게 개선되었다든지, 아니면 아프지 않고 오래 사는 건강비결을 소개한 책을 읽고 몸이 예전과 같지 않…(생략)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독서를 통해 얻는 사치는 `안으로 파고드는 사치`이다. 따라서 읽는 이를 다그치거나 평온하게 할 뿐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남이 자신의 `의미 없이 바빴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정반대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런 사치라면 어디 누릴 만 하지 않을까?
여기 몇 권의 책을 소개한다. 굳이 이 책이 아니어도 상관없지만 읽을만한 책을 선뜻 고르지 못한 예비독자를 위해 최근 주목받고 있는 책을 중심으로 보따리를 풀어보았다.
『미쳐야 미친다』. 몇 주 전, 모 방송 프로그램에 소개됐던 모양이다. 서점에 좍 깔려 있는 게 보지 않으면 손해다 싶을 정도로 심하게 유혹한다. 뭐, 그렇다고 그런 책들이 모두 좋은 책은 아니니 조심할 일이긴 하지만 이 책의 경우엔 그런 혐의를 크게 두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몇 해 전 이 책의 저자(정민)가 쓴 책, 『비슷한 것은 가짜다』를 읽은 적이 있는데, 옛글을 현대적으로 변용한 솜씨가 돋보였다. 풀어썼다고는 하지만 옛글이라 쉽게 읽히지 않는 핸디캡이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내공(?)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그의 책을 다시 만나다니....
솔직히 말하자면, 전작(前作)처럼 읽기가 쉽지 않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온전히 지울 수 없었던 터라 마냥 좋을 수만은 없었다. 그런 긴장을 안고 시작한 책, 『미쳐야 미친다』는 제2장 「맛난 만남」의 세 번째 얘기, `어떤 사제간 - 권필과 송희갑의 강화도 생활`을 준비하면서 돌연 읽는 재미에 빠져들게 했다. 재야에 묻혀 있는 권필의 학문을 높이 산 송희갑이 사제의 예를 청하고 찾아온 것이나 이후 권필이 제자를 대하는 진정성과 장래에 대한 염려, 병이 든 스승을 뭇 제자들이 다 떠나고도 하루도 거르지 않은 송희갑의 정성스런 병구완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생각에 빠져들게 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조선지식인의 내면읽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의 제목 `미쳐야 미친다`는 사자성어 `불광불급(不狂不及)`을 풀어 쓴 말이다. ??무릇 한길로 매진하지 않으면 이루지 못한다.?? 세상에 미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큰일이란 과연 많지 않을 것이다. 무엇을 하고자 한다면, 그래서 그 일에 큰 업적을 이루고자 한다면 미쳐야 한다는 말, 사실 지금도 새겨들어야 할 말임에 틀림없다.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익히 알려진 인물, 하지만 그에 대해 제대로 아는 이가 많지 않을 만큼 단순히 명성만으로 기억되는 불운한 정치인, 정약용. 이 책을 통해 나는 정약용의 내밀한 속내와 그를 둘러싼 정치상황과 그 형제들이 보여 준 놀라울 정도의 기개를 엿볼 수 있었다. 상하권이 주는 중압감 못지않게 개혁 정책을 막아서려는 수구파의 집요한 정치 공세 속에서 정조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자 곧바로 귀향길에 올라야 했던 정약용의 열망과 한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했다. 누군 그랬기 때문에 여유당전서와 같은 불후의 명작을 남길 수 있지 않았느냐 하지만 정약용의 시대와 삶을 내밀히 관찰한 이라면 그것을 두고 그렇게 단순하게 말하지 못하리라.
이 책의 다소 아쉬운 점을 굳이 꼽으라면 주변 상황을 지나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하느라 이미 했던 얘기가 또 나오는 것 같은 지루함이 없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느라 정작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이 겪었을 시대적 고뇌와 인간적인 고민의 흔적이 온전히 담기지 못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선각적 정치인이 실험하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작동하는 좌절된 과제를 오늘 우리에게 던짐으로써 정치적 이상향에 대해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장점을 두루 갖추고 있다. 필독할 책이다.
더불어 『인간만사 새옹지마』는 꼭 소개하고 넘어가야겠다. 질곡의 한국현대사를 정면으로 관통한 시대 정신, 리영희 교수의 책이다. 지난 달 이맘때 그리 늦지 않은 저녁, 모처럼 들른 책방에서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읽어 내려간 르네 지라르의 책,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를 무척 만족해서는 주저 없이 고르고 난 다음날, 부모님 댁에 셋째와 함께 있을 걸 생각해서(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를 무척 좋아하는 터라 부모님 댁에 가기만 하면 내게 오는 시간이 평소의 반의 반으로 줄어든다.) 바삐 책방에 들른 나는 서둘러 또 다른 한 권의 책을 집어 들었다.
『인간만사 새옹지마』다. 1991년에 첫 출간된 소책자. 어디선가 이 책의 앞부분을 읽었다는 생각이 순간 스쳤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고 나서 알았다. 시대를 일깨운 그의 불후의 명저, 『우상과 이성』 뒷부분에 단편 몇 점이 실렸었다는 걸. 참 기억이라는 놈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불쑥 튀어나와선 전혀 새로운 방식의 조우를 허락한다는 것, 새삼 느꼈다. 시대정신은 그야말로 시대를 막론하고 생생히 살아있다는 사실은 사실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해야겠다. 이 책을 통해 저자의 사상의 변천 과정 전부를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저자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과 안목은 충분히 꿰뚫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위에 소개한 세 권의 책은 적어도 무엇을 읽을까, 를 두고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격과 내용을 갖추고 있다고 확신한다. 이 부분 전적으로 독자가 판단할 일이지만 소개하는 입장에서 치자면 어떻게 비춰지든 이 책들이 개개인에게 기여하는 바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갖고 있다. 모쪼록 이 책을 읽는 이 모두에게 사고의 전환과 지나온 삶의 성찰적 반추가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