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메이드 인생을 읽고나서 소설독후감 레디메이드 인생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을 읽고
‘ready-made’, ‘만들어 놓은, 제 것이 아닌’이란 뜻의 영단어이다. 타인에 의하여 만들어진 인생,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닌 인생을 산다는 것, 레디메이드 인생. 도대체 누가 이렇게 듣기만 해도 비참함이 풍겨오는 인생을 살아간다는 말인가. 또, 사실주의 작가 채만식은 이 기성품 인생을 사실적인 시각과 글로 그려냄으로써 무엇을 고발하고 싶었던 것일까?
채만식이 이 소설을 현재에도 발행되는 시사 잡지 ‘신동아’에 발표한 해는 1934년. 바로 이때가 ‘레디메이드 인생’의 배경이 된다.
매번 신문사로부터 취직을 거절당하고, 방세도 미루기에 바쁜 주인공 P. 그는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은 실업자이다. 그는 무지하고 능력이 없는 것인가. 아니다. P는 고등교육까지 거친 그 시대의 지식인층, 인텔리 중에 하나였다.
여학생, 신여성이라는 없던 말이 생기고 배우고자하는 …(생략)

소설, ‘레디메이드 인생’을 완성하였다.
레디메이드 인생의 대표자 P에게는 심지어 이혼한 아내와 형에게 맡겼던 어린 아들도 있었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의 형을 그의 자식을 아버지의 품으로 보내려한다.
아들이 오기에 앞서 막노동으로 15원을 벌어 모은 P. 기차로 운송되어 온 아들 녀석이 아랫목에서 외로이 잠든 모습에 전에 없이 애정을 느끼는데... 그는 아들을 어찌할 것인가.
다음 날, 그는 아들내미 창선을 인쇄소에 들이었다. 그리고 돌아서서 말한다. 레디메이드 인생이 비로소 임자를 만나 팔리었다고...
그는 아들 창선이 자신과 같이 비참하고 배고픈 인생을 살지 않길 바랐던 것일까? 애초부터 아들에게 생일을 시키길 원했던 P는 아들을 보통학교에 보내지도 않고 인쇄소에 넘기었다. 인쇄소에 사정사정을 해가며 아들을 맡긴 것은 창선에 대한 부정이고 애정일까? P는 인텔리라는 뼈시린 고통을 대물림하기 보단 공장 일이 더 쉬우리라 판단한 것일까?
나는 아직도 P의 마음과 그의 결정 그리고 그가 돌아서서 했던 마지막 발언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철이 들고 성인이 되어 의무를 배우고 가정을 이루어 책임이란 말을 깨닫게 되면 아버지인 P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단편의 소설을 통해 이 시대의 사회를 비판, 풍자한 채만식. 실은 그 역시도 인텔리였다. P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글에 재능이 있어 신문사 일을 오래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도 경제적으로 자유롭지 못하였고 별거 중인 아내와 두 아들이 있었다.
채만식이 30년대를 좀 더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바로 인텔리였기 때문일 것이다.
원치 않았던 그의 조혼으로 인한 아내와의 별거. 편할 수 없었던 삶. 원고지를 한 움큼 가득 쥐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그의 궁핍한 생활. 채만식은 소설 속에서 P라는 인물로 하여금 자신의 한을 표출해 보이고 싶었던 것일까? 소설을 발표하고 한결 가벼이 마음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P뿐만이 아니라 P의 친구 M과 H. 담뱃값도 안 되는 돈 몇 전에 정조를 파는 계집, 방세 6원에 후한 인심 내비치는 노파... 채만식은 이들을 통해 1930년대 부끄러운 그 사회를 서슴없이 고발하고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풍자하는 사회는 1930년뿐이 아닐 것이다. 나에게 30년대의 인텔리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던 까닭은 현대 사회의 인텔리들 때문이다.
고도의 과학 발전을 이룩한 현재에도 심심치 않게 인텔리들을 볼 수 있다.
일류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난에 땀 흘리기 바쁜 젊은이들, 학사에 박사에 학위를 취득하고도 직장을 얻거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해 산골에 구멍가게를 차리는 인재들... 이들이 과거의 인텔리들과 겹쳐 보이는 이는 나뿐만이 아닐것이다.
취업난과 더불어 청년 취업률이 바닥을 치는 현재. 30년대를 비판하던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으로부터 우리도 고발 당하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인텔리라는 아픈 이름들이 과거의 추억에서 그치도록 사회적, 개인적으로 반성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