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을 읽고 독후감나목

나목을 읽고
가을이 지나 겨울로 접어들 무렵, 나무는 자신을 덮어 주던 그 잎새들을 다 벗겨 놓은 채, 나목이 된다. 작가 박완서가 왜 제목을 나목이라 지었을까. 오래 되어 보이는 표지 위에 헐거 벗은 나무 한 그루의 그림을 보고 난 그렇게 생각했다.
이 작품은 전쟁이 한 여자에게 얼마나 많은 아픔을 주고 떠났는지에 대해 말해주고 있었다. 어머니의 무관심, 어쩌면 어머니의 행동은 무관심이기보다 세상을 포기했다고 하기에 적합했다. 아들 둘을 한꺼번에 잃은 그녀의 어머니는 아들만 잃어버린 것이 아닌 듯 했다. 아들을 향한 꿈과 기대, 행복한 미래상, 모성애를 모두 아들 시신의 파편 앞에 던져버린 어머니는 어쩌면 원인이 된 딸아이의 입을 원망하는지도 몰랐다.
오빠는 사랑채 벽장 안에 숨겨두는 게 좋을 것 같아. 거기가 더 찾기 힘들잖아... 주인공 이경의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리고 …(생략)

낀다. 그리고 생계를 위하여 작업으로 뛰어든 옥희도를 보며 그의 부인에 대해 강한 시기심을 느끼고 그녀에게 자격이 없다는 생각까지도 하게 된다. 그리고 옥희도와 이경은 매일 문구점 앞 자유를 만끽하며 와인을 마셔대는 침팬지 인형 앞에 서서 함께 웃는다. 어쩌면 옥희도씨는 이경에게 있어서 하나의 탈출구가 아니었는지에 대해 나는 생각했다.

책에서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소리가 나왔다. 그것은 필경 좋은 소리임에 분명했지만 적어도 나목이라는 이 작품 속에서는 비이냥에 불과했다. 언제부터인가 미군들은 전형적인 한국 여인들을 깔아뭉개듯 이 말을 쓰고 있었고 그 말에 반박을 하고 싶어서였는지 아니면 PX에 한동안 나오지 않는 옥희도씨에 대한 반발심이었는지 미군 한 명에게 몸을 맡긴다. 하지만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뛰쳐나오고 그날 밤은 옥희도씨 부인에게 의탁하게 된다.

이경이 옥희도씨의 집에서 본 것은 고목이었다. 옥희도씨는 그 동안 작품을 그리느라 나올 수가 없었고 이경의 뇌리에는 홀로 그려진 쓸쓸한 나무만이 기억에 남아있는 듯 그것만을 생각했다. 처음에 그녀는 그 그림이 외로움을 상징하는 것 같아 그 탓을 부인에게 돌렸던 이경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집에 돌아간 이경은 본다. 삶에 희망을 만들지 않으려는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는 딸을 부른 흔적조차 없이 돌아가신 것을...
세월이 흘러 이경은 결혼을 한다. 남편은 옥희도씨의 도향 후배인 태수. 그리고 태수와 함께 아이를 낳고 불행하지 않을 만큼의 생활 속에서 살다가 신문에서 옥희도씨의 추모전을 보게 된다. 세상 사람들은 한 사람의 가치를 살아있을 때는 몰라주다가 죽어서야 알아준다고 태수는 이야기한다. 옥희도씨의 고향 후배이자 이경과 옥희도씨 사이에서 힘들게 이경을 사랑했던 태수. 이경은 잠시 묻어두었던 옥희도씨를 떠올리며 추모전이 열리는 곳을 향해 집을 나선다. 그리고 추모전에서 이경은 알게 되었다. 자신이 전에 보았던 그 쓸쓸한 고목은 사실 고목이 아닌 나목이었음을... 낙엽이 떨어져 버린 후의 나목을 옥희도씨는 표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이경은 알게 되었다. 자신이 옥희도라는 나무를 스쳐 지나간 한명의 여인에 지나지 않았음을...

글을 읽으며 어쩌면 글에서 고목과 나목을 결정지은 것은 그림의 표현이 아니라 이경의 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을 하고 있을 당시에는 쓸쓸한 옥희도의 모습만을 보았던 이경은 그림을 고목으로 봄과 동시에 옥희도씨가 외롭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각자의 삶을 살며 태수와 결혼을 하고 나름대로의 안정된 생활에 접어들었을 무렵 보았던 추모전의 나목은 처음 보았던 이경의 눈보다는 객관적이었다. 자신의 헐벗은 몸으로 혹한 겨울을 견뎌내야 하는 나목. 이경의 눈에 고목이 나목으로 보이면서 옥희도씨가 겪었던 것은 외로움이 아님을 알게 되고 그걸 안 만큼 이경이 어느덧 성숙해 졌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그동안 읽은 작가 박완서의 글은 대부분 자신의 어린 시절이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글을 읽을 때마다 아는 부분을 읽고 또 읽어서 많이 익숙해져 있었는데 나목은 그런 면에서 굉장히 객관적이고 독특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