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의 들꽃을 읽고 기억 속의 들꽃

<기억 속의 들꽃>
사람은 어느 누구나 잊혀지지 않는 어릴 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나도 그럴 것이며, 나의 어머니 아버지, 친구들 모두 그러한 작은 추억 하나는 마음에 새기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그런 추억들은 지금의 내가 힘들 때 힘을 주고 용기를 심어주는 친구가 된다. 나는 과거의 어린 나와 대화하기도 하고, 같이 생각도 나눈다. 현재의 어려운 문제에 대해 과거의 나에게 조언을 구하는가 하면, 과거의 크고 작은 실수들에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했던 과거의 나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주기도 한다. 친구들과 부대끼며 소풍이나 수학 여행 때 반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며칠 나절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춤 연습을 했던 추억이 있는가 하면, 여자아이들과 장난을 하며 별 부끄러움도 없이 어울리던 그 때가 그립기도 하다. 초등학교 때 단짝 친구 민선이나 상훈이 같은 친구들이 생각나기도 하고 함께 했던 그 즐거운 시간들…(생략)

맞겠다. 이 소설의 이야기 속 배경은 전쟁 당신의 만경강 근처 어느 작은 마을이다. 이는 전쟁의 상처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피난 행렬에서 떨어져 나온 소녀와 `나` 가 어떻게 전쟁을 보내고 자라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아울러 갑작스레 전쟁을 맞아 가족들의 목숨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뜻밖의 금반지 행운을 움켜쥐기 위해 눈을 불을 켜는 어른들의 모습도 보여주어서, 작은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 `기억 속의 들꽃` 은 이런 이야기이다.
한국 전쟁이 일어나 사람들이 남으로 남으로 피난을 떠나던 무렵, 만경강 근처의 어느 마을에 부모를 잃고 피난 행렬에서 떨어져 나온 아이가 한 명 남았다. 마을에서는 밀려드는 피난민들 때문에 피해가 적잖은 데다 전쟁 중이라 먹을 것이 부족했기 때문에, 아무도 그 아이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러나 명선이가 내미는 금가락지를 본 어머니는 또 다른 무언가를 기대하며 그 아이를 거두어들인다. 나는 그런 어른들의 계산적인 행동이 몹시 싫었지만, 그 때의 상황을 봐서 크게 나무라지는 못하였다. 아마 내가 저 번 달에 읽은 쇼리킴과 마찬가지의 상황이 아닌가 싶다. 그 소설도 배경을 6. 25 전쟁 속에서 소년?소녀의 성장소설을 소재로 그린다는 데서 많은 공통점을 지닌 소설들이 아닌가 싶다. 이런 작은 곳에서도 왠지 모를 반가움을 느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어머니는 놀고 먹는 명선이를 내쫓을 궁리만 하게 된다. 그 때 명선이는 금가락지를 또 하나 내민다. `나` 의 부모님은 명선이가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줄 짐작하고 다그친다. 명선이는 그 것을 피해 도망치지만, 얼마 뒤 당산 숲 속 나무 위에서 알몸인 채로 발견된다. 이 일로 마을 사람들은 명선이가 여자아이인 것을 알게 되고, 그 아이의 목에 걸려 있던 패 같은 것을 본 아버지는 명선이를 우리 집에서 돌보는 아이라고 선언한다. 나는 끝까지 어른들의 그런 이기적인 행동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 상황이 바뀌어 인민군이 북쪽으로 쫓겨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명선이가 다리 철골 위에서 놀고 있을 때 갑자기 비행기가 나타난다. 그 소리에 놀란 명선이는 만경강 속으로 한 송이 들꽃처럼 떨어지고 만다. 나는 그 장면에서 대단한 감정이 벅차오르는걸 느꼈다. 내가 책을 읽어서이지만, 이 것이 영화로 나온다면 정말 그 느낌을 200배 정도는 더 느꼈을 것 같다. 그게 약간은 조금 아쉽기도 하다.
명선이의 죽음 이후, `나` 는 혼자 다리에 가서 마침내 명선이가 하던 위험한 곡예를 해낸다. 그리고 철골 끝에 매달린 주머니를 발견하고 그 것을 열어 본다. 그 안에는 명선이의 금가락지들이 있었다. 놀란 `나` 는 주머니를 강물에 떨어뜨리면서 이 소설은 막을 내린다.
불과 한두 달 남짓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명선이가 `나`의 기억 속에 이토록 뚜렷이 남은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자기 옷을 뒤질 것에 대비하여 자신만의 장소에 금가락지를 감추어 두고, 필요할 때만 하나씩 꺼내어 쓸 줄도 아는 어른 못지 않은 그런 명선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아이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학교와 학원이다.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컴퓨터 게임에 빠져 들뿐이다. 함께 들판을 뛰놀며 물장구를 치고 수박 서리도 하는 `들꽃` 은 도저히 만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세상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누구에게든 기억 속의 들꽃은 있다. 날 이 만큼 자라게 한 내 기억 속의 들꽃은 누구였던가, 책을 덮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