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네 집을 읽고 그남자네집

그 분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처음 책을 받아들고, 굶주린 사람처럼 단숨에 읽었다. 압도되고 먹먹해진 채로 마지막 장을 덮었고, 스스로도 급하게 읽었다 싶어 며칠 후 다시 집어들었다. 두번째로 읽을 때도 여전히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그만큼, 소설의 첫째 미덕이라 할 수 있는 재미가 살아있는 책이다.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읽는 이를 빨아들이는 이야기의 감칠 맛, 세상에 대한 깊은 시선도 여전하지만, 이번 작품에는 기존의 작품들과는 다른 발랄함과 도발도 있다. 작가가 말한 대로 50년이 지난 후에 쓰는 첫사랑 이야기인 탓이다. 50년전의 연애담을 이렇게 그려낼 수 있는 칠순의 노작가, 한번 더 놀랐다.
책은 과거와 현재를 유연하게 오간다. 후배의 집들이로 찾아간 처녀시절을 보낸 동네, 거기에 그대로 든든히 서 있는 ‘그 남자네 집’, 그 집을 바라보면서 작가 자신을 많이 닮아 있는 극중 주인…(생략)

춘희도 모두 그 참혹했던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이었으니까.
개인적으로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에 이어지는 자전소설의 마지막 3부작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조금 가닥은 다르지만 이 「그 남자네 집」은 그 마지막 3부에서 다루어져야 할 시절과 다소는 겹친다. 앞의 두 책처럼 완전히 기억에만 의존해서 쓴 책이 아니라 다소 소설적 요소가 가미되었음은 틀림없지만, 작가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이후의 시절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의 대부분이 이 책에 들어있어 보이니 말이다. 이 책으로 그 3부작이 채워질지, 아니면 다시 더 자전적인 3부가 나와 줄지 모르겠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이 책과 다소 겹친다 해도 3부가 나와주길 바라지만. 작가의 말대로 여기저기서 수없이 울궈먹은 기억이라 해도 그 때마다 조금씩은 다르게 다가오니 말이다.
작가로서 감탄스러운 동시에 그 시절을 살아내신 어른으로 더 존경스러운 사람, 박완서 선생은 그런 분이다. 유달리 어른들의 옛 시절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모 할머니 뻘쯤 되실 그분께 조근조근 옛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작가의 말을 빌자면 ‘낭비할 청춘이 가득한’ 젊은이들은 어른들의 그 시절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 시절을 같이 겪어낸 어른들은 그 때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